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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트럼프도 예상못한 '무제한 돈 살포' 역습···실업자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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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난주 회사채 90조 발행…역대 최대치

증시에 패닉한 투자자들, 우량 회사채에 몰려

Fed 회사채 매입 방침에 투자 매력 높아져

옐런 "과한 기업 부채 위험, 연쇄 디폴트 우려"

트럼프 실업 수당 확대에 오히려 실업자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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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의 '슈퍼' 경기부양책이 의도치 않게 실업자를 양산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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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사상 초유의 재정·통화 ‘쌍끌이’ 정책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경제 위기에 맞서고 있지만, 오히려 기업·가계의 파산 위험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방준비제도(Fed)의 ‘무제한’ 달러 살포 때문에 미 회사채 발행이 사상 최대치로 급증했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슈퍼’ 경기부양책으로 기업이 맘 편히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지적이다. 정책 의도와 반대로 Fed는 금융 위기 가능성을 키웠고, 트럼프는 실직자 수를 늘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주(3월 23~27일) 미국에서 발행된 투자등급 회사채는 731억3000만 달러(약 90조원)에 달했다. 주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다. 이전 최대치였던 2013년과 비교하면 21% 늘었다. 우량주로 꼽히는 나이키와 홈디포 등이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미국 회사채 시장은 지난해 말 기준 6조6000억 달러로 2009년 이후 78% 급증, 사상 최대 규모를 매번 경신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 23일 Fed가 사상 첫 ‘투자등급’ 회사채 매입 방침을 밝히면서 회사채 시장에 불을 붙였다. 회사채는 신용도에 따라 투자등급, 투기등급 크게 2가지로 나뉜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를 기준으로 하면 Aaa에서 Baa3까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ㆍ피치 등급으로 치면 AAA에서 BBB-까지가 투자(적격)등급이다. Fed의 든든한 지원 속에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전략으로 기업들이 자금 확보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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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규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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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업계도 환호했다. 자금이 몰리며 회사채 금리는 급락(가격 급등)했다. 블룸버그 바클레이즈 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미국 투자등급 회사채 금리는 3.70%를 기록했다. 한 주 전인 20일(4.58%)보다 0.88%포인트 떨어졌다.

주식 시장이 폭락하며 갈 곳을 잃은 신규 투자자가 대거 유입됐다.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주식·비우량채권·부실채권 등 위험자산 위주로 투자하던 이들이 투자등급 회사채 시장에 몰려 왔다”며 “나이키 회사채 입찰에 참여한 4분의 1은 원래 리스크 감수형 투자자”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경영 환경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우량 회사채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 특히 투자등급 가장 아랫단에 있는 기업들은 연쇄적으로 정크(투기) 등급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지난달 31일 미국 비금융 회사채 전반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낮췄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들어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회사채가 이미 7650억 달러(약 941조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UBS증권은 코로나19 경기 침체로 1조 달러 규모의 회사채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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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Fed 의장이 의도한 것과 다르게 전례없는 Fed의 돈풀기 정책이 회사채 시장에 거품을 일으키고 있다고 외신은 지적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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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닛 옐런 전 Fed 의장은 지난달 31일 “(코로나19 국면에 들어) 과도한 부채는 기업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며 “수개월 내에 잇단 디폴트를 보게 될까 두렵다”고 우려했다. 그는 “디폴트를 피하려는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줄일 것”이라며 “이는 경기 회복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에서는 실직 대란이 벌어졌다. 3월 셋째 주 실업수당 청구자가 328만 명에 달한 데 이어, 의류업체 갭은 미국·캐나다 직원들의 급여 지급을 보류하고, 메이시스 백화점은 12만5000여 명의 직원 중 대부분이 무급휴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코로나19로 미국에서 가장 먼저 실업 대란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부실한 사회보장 시스템과 더불어 트럼프의 재정 부양책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유럽은 업장 폐쇄 등의 조치에 근로자의 임금을 보전해 주는 방식으로 ‘일자리 지키기’에 나섰는데, 미국은 실업수당 기간과 범위를 확대해 오히려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27일 시행된 2조2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슈퍼부양책에서 일자리를 유지하는 정책은 전 산업계 중 항공업계에만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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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시스 백화점은 12만5000여명의 직원 중 대부분이 무급휴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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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식당이 영업을 중단할 경우, 영국은 근로자에게 월 2500파운드(약 380만원) 한도에서 임금의 80%를 보전해준다. 또 봉쇄 조치가 끝나면 일터 복귀를 약속했다. 하지만 미국은 실업수당에만 지원을 집중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실업률은 두 자릿수로 치솟을 수 있고, 모기지 상환, 각종 공과금·신용카드 청구서가 날아오는 1일을 기점으로 미국 내 실직자의 대규모 파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경고했다.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벌써 다음 경기 부양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2조 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패키지다. 실업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인프라 투자에 초점을 맞췄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1930년대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추진한 ‘뉴딜 정책’을 벤치 마크했다.

트럼프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금리가 사실상 제로인 지금이 바로 수십 년 동안 지연된 인프라 투자법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투자 예산은 규모가 아주 커야 하고 과감해야 한다”며 2조 달러를 제시했다. 이어 “예산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한대 거대했던 우리나라의 인프라를 재건하는 데 오롯이 쓰여야 한다”고 밝혔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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