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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코로나 틈타, 휴업수당 안 주고 구조조정…무급휴직 늘리려 ‘문서 필사’ 황당 갑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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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코로나 피해 사례 분석

확산 초기엔 무급휴업 상담 최다

3월 들어 해고·권고사직 피해 급증

항공사 하청, 고용 유지 대신 감원

특수고용·프리랜서 월 50만원 지원책

기준·절차 까다로워 ‘그림의 떡’ 지적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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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의 지상여객서비스 협력업체 ‘케이에이’(KA)에서 근무하는 ㄱ씨는 1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황당한 지시를 받았다. 세계 50여개 나라 및 도시의 코로나19 관련 출입국 규정이 작은 글씨로 빼곡히 담긴 문서 3장을 모두 손으로 베껴 쓴 뒤 제출하라고 했다. ㄱ씨와 동료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관리자는 “공부도 되고 좋지 않냐. (제출을) 안 하면 오늘 퇴근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ㄱ씨 등이 A4 용지 11~15장에 이르는 ‘과제물’을 무기명으로 제출했을 때 관리자는 아무런 확인도 없이 직원들을 돌려보냈다. 김지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아시아나지상여객서비스지부장은 “회사는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했지만, 6월까지 최소 56일(8주)의 무급휴직에 동의한 직원들을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괴롭혀 추가로 휴직기간을 늘리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코로나19로 고용위기에 처한 노동자 등의 지원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여전히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를 활용해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기업에 6월까지 휴업·휴직수당의 최대 90%를 보전해 고용안정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부 기업은 회사가 부담해야 할 일부 휴업수당마저 지급하지 않으려고 케이에이처럼 무급휴직을 강요한다.

케이에이 쪽은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 대기업으로 분류돼 휴업수당의 67%만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머지 회사 부담분을 감당할 상황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달부터는 정부가 근로자 수에 관계없이 자산총액 5천억원 미만 기업에도 휴업·휴직수당의 90%를 지원하기로 해, 이 회사도 지원금이 상향 조정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논리대로라면 케이에이는 무급휴직을 강행할 가능성이 크다. 한재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조직국장은 “고용유지지원금 비중을 높이더라도 신청을 사업주의 자율에 맡긴다면 무급휴직 피해는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를 빌미로 사실상의 구조조정까지 단행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총이 2월1일부터 3월31일까지 전국 16개 상담센터 등에 접수된 코로나19 피해 사례 153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확산 초기였던 2월에는 ‘무급휴업·휴직’(45.2%) 관련 상담이 가장 많았지만, ‘장기전’에 접어든 3월 중순 이후(16~31일)에는 ‘해고·권고사직’(20.4%) 피해 접수가 급증했다. 한재영 조직국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1·2차 하청업체 9곳의 경우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해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직원을 감축하고 있다. 한시적으로 기업들의 해고를 금지하거나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을 강제하지 않는 이상 구조조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지만 고용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영세사업장 무급휴직 노동자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프리랜서에게 최대 두달간 월 50만원씩 주는 생활안정지원금도 입증을 위한 구비서류 마련이 쉽지 않아 혜택을 볼 수 있는 노동자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지원 기준을 보면, 국가감염병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된 2월23일 이후 5일 이상 무급휴직을 해야 고용안정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특고와 프리랜서는 코로나19로 대면서비스가 어려운 직종이어서 같은 날 이후 5일 이상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소득이 25% 이상 줄어든 사실을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당사자들은 이런 정부 지원책이 ‘그림의 떡’이라고 하소연한다. 김강운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대리운전노조 전북지부장은 “상당수 대리운전업체들이 용역계약서 등에 부당한 조항을 넣은 경우가 많아 기사들에게 계약서를 주지 않거나 근무기록 확인서 등을 소송에 활용할 것을 우려해 발급을 꺼린다. 대리운전 기사가 아닌 행정기관이 직접 업체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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