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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20여년 방황 거쳐 찾은 사회정의의 해법은 ‘토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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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한국방송통신대 유범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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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한국방송대 연구실에서 유범상 교수가 직접 그린 동화의 전개도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와 정의를 소재로 한 정치우화에 이어 내년까지 인권, 노동, 민주주의와 평화 정치우화를 연달아 펴낼 예정이다. 사진 서혜빈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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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은 사회문제 해결의 열쇠죠. 토론의 힘은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습니다. 소수의 전문가, 명망가 중심으로 이슈를 끌어갈 게 아니라, 결핍이 있는 일반 사람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죠.”

최근 <정의를 찾는 소녀>(마북)를 펴낸 유범상(53) 한국방송통신대 사회복지학 교수를 지난 19일 대학로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주부, 사회복지사, 연구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입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쉬우면서도 깊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책을 썼다고 했다. 지난해 자본주의를 소재로 펴낸 <이매진 빌리지에서 생긴 일>에 이어 두 번째 정치 우화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여덟 살 다람쥐 소녀 ‘새미’가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정의란 무엇인지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았다.

어릴적 판자촌 전전 ‘좋은 세상’ 의문

대학 거쳐 노동운동하다 학문의 길

영국 유학 ‘비교사회정책’ 박사학위

“마흔셋에 ‘저마다 다른 정의’ 깨달아”


정치우화 ‘정의를 찾는 소녀’ 펴내

“시민 대화의 장 ‘정치축제’ 준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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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범상 교수는 매주 목요일마다 마중물 협동조합 조합원들과 ‘목요광장’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2시간 토론, 2시간 강의, 2시간 뒤풀이가 목요광장의 시간표다. 사진 유범상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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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제가 주인공 ‘새미’에요. 새미는 긴 여행 끝에 결국 ‘정의란 끊임없는 질문 속에 움직이는 것’이라고 깨달아요. 정의는 계속 바뀌고, 저마다 생각하는 정의는 다르다는 거죠. 저도 대학생 때부터 시작한 20년간의 방황을 끝내고 마흔셋에 비로소 답을 찾았습니다. 정의를 자유롭게 꺼낼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겠다, 다짐했죠.”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난 그의 가족은 아버지 사업이 연달아 망하는 바람에 인천 남구 도화동의 판자촌으로 밀려났다. 그마저도 새 건물을 짓는다고해서 쫓겨났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던 소년은 ‘가난한 사람도 잘 살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한때 대통령을 꿈꾸기도 했다. 내내 ‘좋은 세상이란 무엇일까?' 답을 찾아 헤매다 고려대 정치학과에 들어갔다. 졸업한 뒤 ‘노동이 곧 보통 사람들의 삶’이라 생각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사회주의 붕괴를 겪으며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느껴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노동을 연구하는 사람이 됐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던 그는 서른아홉에 무작정 영국으로 유학해 비교사회정책으로 또 하나의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민사회 속으로 들어가 시민활동가를 양성하고 싶었어요.” 마흔셋.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그는 인천으로 돌아가 시민교육 세미나를 열었다. 좋은 세상이란 무엇인지, 그만의 답을 찾았다고 생각해서다. 철학, 정치 등을 주제로 매 학기 강의를 연다. 올해로 11년째다. 그만큼 함께하는 사람도 늘었다. 2017년 ‘시민교육과 사회정책을 위한 마중물’이라는 이름의 협동조합을 만든 이유다. 혼자 힘으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지하수를 마중하는 한 바가지가 되자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 조합원들과 함께 인천 남동구에 복합문화센터도 세웠다. 카페, 갤러리, 공연장, 강의실 등 시민을 위한 공간이다. 매주 목요일,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책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 이슈에 대해 열띤 토론도 벌린다. 지난 1월엔 ‘군에 간 트렌스젠더’를 주제로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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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동구 마중물 복합문화센터에서 유범상 교수가 아이들을 위한 강연을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던진 질문은 부모들이 답을 찾을 기회로 연결된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학습하는 것이 이 강연의 목표다. 사진 유범상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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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학습을 넘어 실천에도 힘쓰는 중이다. 지난 5년간 전국의 57개 노인복지관을 돌아다니며 ‘선배 시민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노인을 돌봄의 대상이라고만 인식하면 안 돼요. 노인도 공동체를 돌볼 수 있는 거거든요. 후배 시민들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선배 시민이 되자고 말했습니다.”

이후 변화가 생겼다. 충북 진천군 노인들이 생활쓰레기 불법투기와 노인상대 불법 상행위 근절 등을 군에 제안하며 지역문제 해결사로 나선 것이다. 실제로 노인들이 직접 제안한 ‘무인텔 난립 제한’이 조례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경기도 성남시에선 바리스타 노인들이 성남시 소재 대학 3곳을 찾아가 ‘청춘 응원 커피 나눔’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자신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자’라고 말하는 그는 오는 10월 ‘정치 페스티벌’을 기획 중이다. 스웨덴의 알메달렌 정치박람회(Almedalen Week)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1982년부터 해마다 여름 휴가철이면 휴양지인 고틀란드 섬의 알메달렌공원에서 정치인과 일반 시민들이 모여 편하게 소통하는 자리인 이 정치박람회는 ‘21세기형 아고라'라고도 불린다.

“차이가 편안하게 드러나는 광장을 만들고 싶어요. 여기선 누구나 정치인이 될 수 있죠. 심지어 어린이들도요. 이게 제가 그동안 찾아 헤매던 답인 것 같습니다.”

서혜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hyeb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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