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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ESC] 고조 내레 한국인이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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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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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같은 반에 장광설 늘어놓기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당시 베스트셀러 소설 <람세스>를 읽고 람세스의 친구들이 자기 친구들인 양 종일 떠드는 녀석이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다가와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너의 조상은 아마 스키타이인일 거야.” 뚱딴지도 그런 뚱딴지는 없을 것이다. “축구나 하러 가자.” 난 조상님들껜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포르투갈 축구 전설 에우제비우라면 모를까.

해외여행을 가면 현지인들은 기막히게도 알아맞혔다. “너 한국인이지?” 가끔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지만, 열에 아홉은 날 얼굴만 보고도 한국인이라 확신했다. ‘그럼 그렇지. 역시 피는 못 속여.’

지난 24일 처가 단체 카톡방(단톡방)에 얼굴 사진이 한장 올라왔다. 3살 조카(처남의 아들)였다. 사진엔 여성, 노르웨이인 68%, 핀란드인 19%, 한국인 9%, 영국인 4%라고 적혀 있었다. 민족성과 성별을 견적 내주는 앱(Gradient Photo Editor)으로 얼굴 사진을 분석한 결과였다. ‘어째서 부산 사람 둘이 노르웨이 여자애를 낳은 거지?ㅋㅋㅋ’란 반응에 이어 전 가족의 ‘출신 성분’을 분석한 사진들이 올라왔다. 장인어른은 멕시코 남성 50%, 다들 수긍하는 눈치였다. 장모님은 한국인 남성 41%, 부인은 중국인 여성 51%로 다소 무난한 결과가 나왔다. ‘매형ㅋㅋㅋㅋㅋㅋㅋ’란 메시지에 이어 내 사진. ‘북한 여성 77%’. ‘ㅋㅋㅋㅋㅋ여자분이시네요. 게다가….’(처남댁), ‘ㅋㅋㅋㅋㅋ나 지금 혼자 사무실 남아있는데 빵 터짐ㅋㅋㅋㅋㅋ’(부인)과 같은 반응이 잇따랐다.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므로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었지만, 괜히 멋쩍은 나도 한마디 끄적거렸다. ’남남북녀라더니...(북녀로 나오면 좋은 거 아니냐?)’ 아무도 내 말을 받아주지 않았다. 난 두 아들의 사진 십여장을 분석한 끝에 귀한 사진 한장을 얻었다. 단톡방에 그 사진을 올리며 한 줄 보탰다. ‘OO도 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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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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