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6 (목)

[ESC] 오후 5시, 베란다에서 만나요!…인도인들의 코로나19 견디는 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작은 미미의 인도살이

한겨레

한겨레

꼼짝 못 하게 된 지 일주일이 넘었다. 총 3주간의 봉쇄령은 지난주 화요일 밤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특별 담화문을 통해 갑자기 실시되었다. 그 어떠한 예고도 없었다. 인도 사람은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다들 이 방법만이 인도에서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어책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통행증을 가진 사람은 길거리를 다닐 수 있지만, 통행증을 발급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통행증 없이 다니면 20만원 이상의 벌금을 내야 하거나 경찰에게 등짝을 흠씬 얻어 맞는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도로를 오가는 건 오로지 극소수의 차량과 소떼뿐이다.

봉쇄령 실시 전 주부터 인도인들은 사재기에 돌입했다. 마트에는 대용량 밀가루와 쌀, 손세정제, 인도 국민 라면 ‘마기’, 채소 등을 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도 부랴부랴 장을 봤다. 한인 마트에는 쌀이 동나서 다음날 다시 오라고 했다. 모디 총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생필품을 파는 곳은 열어놓을 테니까 사재기는 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급변하는 인도에서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음날 한국 쌀 10㎏를 두 포대 쟁여놓고 나서야 불안감이 조금 사라졌다.

본격적인 봉쇄령 이후 인도는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한다. 먹거리를 사러 갈 때만 외출이 허락됐다. 100m 남짓 떨어진 동네 슈퍼에 가는 길목에 5명 이상의 경비원들이 차례로 행방을 묻는다. 겨우 슈퍼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2m 간격으로 줄을 선다. 행렬은 길다. 아는 얼굴들이지만, 서로 말은 아낀다. 가게에는 5명만 들어갈 수 있기에 한참 기다린다. 30분이 지나 드디어 가게에 입성. 막상 내가 원하는 물건은 다 떨어진 상태다. 내일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째서 인도의 4월은 이다지도 좋은가 싶다. 3월에 30도, 4월에 40도, 5월에 50도라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인도 날씨지만 올해는 유독 날도 시원하고 심지어 공기도 맑다. 길가에 화려하게 핀 봄꽃들을 잠시 감상하고 있자니 저 멀리서 경비원이 곤봉을 든 채 어슬렁어슬렁 오는 게 보인다. 나는 눈길을 피하며 걸음을 바삐 옮긴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에 ‘달고나 커피’가 유행이라면, 인도에는 오후 5시 세리모니가 한창이다. 인도 전역에 통행 금지령이 처음 떨어졌던 그 날, 모디 총리는 딱 하루 한 번, 5분만 의료진들을 응원하는 박수 세리모니를 허락했다. 유일한 사교 활동이랄까.

대략 이런 거다. 오후 5시가 되면 사람들이 베란다로 나와 선다. 상반신 탈의를 한 아저씨, 파자마 차림의 언니, 팬티 바람의 어린아이들이 나타난다. 각자 냄비, 따블라(인도 전통 악기), 종 따위를 들고 있다. 나도 작은 프라이팬과 국자를 챙겼다. 아이는 탬버린을 들었다. 그렇게 베란다로 나가 맞은편 사람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지만, 다 같이하다 보면 흥이 오른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장단을 맞추는 그 순간은 짜릿하다. 우리나라 굿거리장단, 자진모리장단, 휘모리장단과 비슷한 인도의 화려한 리듬 속에서 정신없이 냄비를 쳐댄다. 부부젤라를 부는 사람, 기타를 공중으로 휘돌리는 사람, 아예 노래방 마이크를 들고 와서 무반주 라이브 공연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도 저도 없는 사람은 박수 소리로 거든다. 우리만의 이 공연은 짧게는 15분, 길게는 40분까지 이어진다. 첫날, 정말로 사람들이 베란다로 나와 이 세리모니를 할까 의심했던 나, 40분이 지난 후에는 눈물을 닦아내야 했다. 동네가 떠나가라 지르는 소리에 귀가 아팠지만, 어느 공연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오후 5시께 벌어지는 이 자발적인 응원 세리모니는 더는 고생하는 의료진들만을 위한 소리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 되었다. 역시 발리우드의 나라인가.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흥 많은 사람에게 종일 집에만 있으라고 하니 얼마나 몸과 마음이 답답하겠는가. 앞으로 3주 동안 이어질 공연이다. 공연의 꽃은 ‘막공’이라 하지 않는가. 봉쇄령이 풀릴 4월14일, 우리의 마지막 공연은 어떤 모습일까. 내일은 더 크게 냄비를 두드려야겠다. 시끄러워서 코로나19도 도망가게 말이다.

작은미미(미미 시스터즈 멤버·뮤지션·작가)

한겨레

▶[연속보도] n번방 성착취 파문
▶신문 구독신청▶삐딱한 뉴스 B딱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