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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ESC] 혼술 천국에서 봄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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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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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술집의 분위기다. 실내조명이 지나치게 밝은 곳이나 시끌벅적한 단체 손님이 가득한 곳은 일단 피한다. 혼자 앉을 수 있는 바 테이블이 있는 곳을 선호한다. 제공하는 음식의 양이 너무 많은 것도 곤란하다. “푸짐하게 주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말해도 별수 없다. 혼술에 곁들이는 안주는 살짝 부족하다 싶을 정도가 적당하다. 혼자라도 안주를 여러 개 고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소주, 맥주 말고 간단한 칵테일이나 잔술 종류가 있는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혼자 소주병을 늘어놓고 있으면 왠지 처량할 때가 있고, 맥주는 두어병이면 약간 지치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통과한 곳이 서울 서교동의 ‘동꾼’이다. 지하철 합정역 10번 출구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나온다. 근방에는 중식으로 유명한 ‘진진야연’도 있고 각종 고깃집도 많다. 이런 유혹에 휩쓸리지 않고 오늘의 목적지, 동꾼으로 향한다.

메뉴판의 글씨만 겨우 보일 정도로 어둑한 조명, 좁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분위기, 바 테이블, 적당히 활기찬 분위기까지.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췄다. ‘토마토 베이컨’, ‘닭다리살과 모듬야채구이’ 같은 숯불꼬치부터 ‘오늘의 사시미’, ‘전갱이 튀김’, ‘우엉 튀김과 명란 마요소스’ 같은 간단한 안주까지 고루 갖춘 내실 있는 구성이 돋보이는 곳이다. 이곳의 시그니처 음료인 ‘고수 하이볼’과 ‘오늘의 사시미’, ‘전갱이 튀김’을 주문했다. 1만6000원이라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모둠회의 구성은 예상보다 훨씬 훌륭했다. 광어, 참치, 연어, 데친 문어, 도미, 골뱅이까지 있었다. 차조기 잎에 빨간 참치살을 얹고 고추냉이를 듬뿍 얹어 입에 넣었다. 이에 달라붙는 기분이 들 정도로 쫀득하고 탱글탱글한 식감, 참치 기름의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고수를 듬뿍 넣은 ‘고수 하이볼’로 입 안의 기름기를 헹구고 전갱이 튀김을 집었다. 직접 만든 타르타르소스를 듬뿍 얹은 바삭한 전갱이 튀김을 씹고 있으니 진짜 봄이 온 것만 같았다.

세월이 워낙 하수상해서 누군가를 불러내어 술을 마시자고 권하기도 조심스럽다. 그리운 이의 선한 얼굴을 언제 봤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의 볼을 어루만지는 듯 설레는 봄바람이 그립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과 마주하고 싶은 곳이었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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