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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세계타워] 30% 부족한 긴급재난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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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하위 70%로 제한… 선별 지급 따른 혼란 우려

‘시작이 반’이라고 위안을 삼기엔 좀 맥이 풀린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대책으로 내놓은 긴급재난지원금 얘기다. 이 지원금은 다음 달 중순쯤 소득하위 70%에 해당하는 1400만 가구(약 3600만명)에 대해 가구당 40만∼100만원이 지급될 예정이다. 모두 9조1000억원 정도가 들 것이라고 하는데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계유지와 소비진작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30% 부족한 비상 대책’처럼 느껴진다. 우선,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소득하위 70%로 제한한 게 그렇다. 당·정·청은 재난 구호 대상을 중산층까지 확대했다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잃는 것도 적지 않을 듯하다. 일단 지급대상에서 제외된 1500만명의 소외감은 어찌할 것인가. 벌써 이들 사이에서는 ‘세금만 많이 걷어 갈 뿐 혜택은 하나도 못 받는다’, ‘육아부담 등으로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소득기준에 해당 안 되는 맞벌이 부부는 제외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등의 불만과 볼멘소리가 높다.

세계일보

송민섭 사회2부 차장


소득하위 70% 언저리에 있는 많은 ‘경계인’들의 혼란도 무시할 수 없다. 예컨대 소득하위 69%와 70% 국민이나 71%와 72% 국민은 소득수준만 봐도 별 차이가 없을 테지만 희비가 갈릴 거다. 기준선이 분명하지 않다 보니 자신이 지급 대상인지를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관련 부처 홈페이지는 다운되기 일쑤다. 향후 신청과 심사, 검증 과정에서 납세자 불편과 불만, 행정력 낭비는 또 어찌 감당할 것인가.

발표 시점도 아쉬운 측면이 있다. 재난지원금 논의는 한 달여 전 ‘LAB2050’ 등 학계·시민단체, 일부 정치권·지자체에서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재난구호금을 지급한 뒤 지자체가 소외계층에 맞춤형 지원을 하면 생계유지와 경기부양 효과는 더 클 것이라는 게 기본 얼개다. 정부가 “도입 계획이 없다”, “특단의 비상금융조치”를 거쳐 “(생계 지원·경제 살리기에) 큰 역할”로 결론 내리는 사이 재난구호금 정책 효과와 국민의 대정부 신뢰는 상당히 줄었다.

지자체와의 불협화음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정부의 재난지원금은 4·15총선이 끝난 뒤 5월 이후에나 지급될 전망인데 중복 수령과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재난지원금 조달 방식 또한 매끄럽지 않다. 정부는 어물쩍 필요 재원의 20%인 2조원을 지자체에 떠넘겼다. “더 이상 돈 나올 데가 없다”는 아우성이 잇따르자 3조8000억원 규모의 재난관리기금을 갖다 쓸 길도 열었다. 방재 성격의 기금을 응급 처방에 쓴다 하니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같아 씁쓸하다.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위화감과 박탈감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배려·연대 정신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는 이번 대책안이 한정된 국가 재정을 감안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득상위 30%에까지 지원금을 지급할 경우 추가로 드는 예산은 4조∼5조원이다. 선별 지급에 따른 혼란과 반목, 불신 등 사회적 비용을 감안할 때 이 정도의 예산은 충분히 투자할 만하지 않을까.

정부는 재난지원금 방점이 긴급구호 등 사회복지가 아닌 경제 활성화에 찍혀 있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정부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기업에 수혈하는 예산은 100조원이다. 기업 매출은 소비자들로부터 나온다. 이 중 13조∼14조원을 소비쿠폰 형태로 모든 국민에게 지급한다고 해서 허투루 날아갈 돈이 아닌 셈이다. 국회의 코로나19 2차 추경 처리 과정에서 ‘모든 국민에 대한 보상’과 ‘신속한 지급’을 위한 활발한 토론을 기대한다.

송민섭 사회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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