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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코로나 우등생' 체코, 비결은 수제 면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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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첫 공공장소 마스크 의무화… 감염자 3308명, 사망자 31명

마스크 의무 착용 않는 벨기에는 감염자 1만2775명, 사망자 705명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슈테판 올레야르씨는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따른 영업 금지령으로 가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대신 올레야르씨는 가게 안에서 부지런히 면(綿)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 재봉틀 여러 대로 종업원 10명과 매일 400장씩 만들어 주변에 나눈다. 동네 주민들은 올레야르씨 술집에서 만든 수제(手製) 마스크를 쓰고 외출한다. 워싱턴포스트(WP)에 소개된 프라하의 풍경이다.

조선일보

31일 체코 프라하에서 한 시민이 천으로 만든 마스크를 쓰고 체온을 재고 있다. 체코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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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체코에서는 헌 옷을 활용해 자체 제작한 마스크 쓰기가 열풍이다. 지난 18일 체코 정부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이후 국민이 마스크를 자급자족하고 있다. 필터가 들어 있는 의료용 마스크는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DIY(Do It Yourself·스스로 만들기) 방식의 마스크 제작이 붐이다. 문 닫은 회사, 극장 등에서 재봉틀을 들여다 놓고 헌 옷이나 앞치마 등을 활용해 마스크를 만든다. 요양원의 고령자들도 재봉틀을 돌리느라 바쁘다. 소셜미디어에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마스크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전 국민이 마스크 보급을 위해 손발을 척척 맞춘다. 프라하를 비롯한 주요 도시 시청은 자원봉사자들의 '홈메이드' 마스크를 건네받아 저소득층에게 전달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어떤 곳에서 마스크를 만들고, 어떤 곳에서 모자라는지 파악할 수 있는 '마스크 지도'를 담은 홈페이지가 등장했다. 마스크 소외 지역이 없도록 연대하자는 취지다.

체코 정부는 '내 마스크가 당신을 보호하고, 당신의 마스크가 나를 보호한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안드레이 바비시 총리는 마스크를 쓰고 의회에 출석한다. 보건부 장관은 면 마스크를 만들어 쓰자는 홍보 동영상에 출연했다. 이 영상에는 전염병 학자들이 등장해 면 마스크로도 비말(飛沫·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나오는 침방울)을 통한 감염을 8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효과는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기준으로 1070만명이 사는 체코는 감염자 3308명에 사망자 31명이다. 인구 1150만 벨기에가 감염자 1만2775명에 사망자 705명인 것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벨기에는 1인당 GDP로 체코의 2배에 달하고 이동 금지령을 내려 방역에 애쓰는 나라지만 마스크를 의무 착용하지는 않는다. WP는 "서구 국가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이 문화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틀렸다는 것을 체코가 입증했다"고 했다.

바비시 총리는 지난달 29일 트위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체코 방식으로 대응해 보는 건 어떤가. 단순히 옷으로 만든 마스크 쓰기로 바이러스 감염을 줄일 수 있다"고 썼다. WHO(세계보건기구)는 마스크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진이 구하기가 어려워지면 안 된다며 일반인들은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체코는 헌 옷을 재사용하기 때문에 WHO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체코 언론들은 강조한다.

이웃 나라인 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가 체코의 뒤를 따라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잇따라 의무화했다. 독일 동부 소도시 예나도 수퍼마켓과 대중교통 등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전병율 차의과대학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면 마스크로 바이러스 감염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면서도 "자신에게는 손에 묻은 바이러스를 얼굴에 문지르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비말을 적게 내뿜게 되기 때문에 감염 확률을 낮추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고 했다. 미국 MIT도 기침할 때 침방울이 최대 8m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내놨다. WHO 권고인 '2m 거리 두기'만으로는 비말 감염을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뜻이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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