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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오늘의시선] 민낯 드러낸 위성정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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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 정당’ 부실 공약은 이미 예견 / ‘최악 선거’ 방지는 결국 유권자 몫

4·15 총선을 약 2주일 앞두고 급조된 비례위성정당들이 그 민낯을 계속 보이고 있다. 공천 과정에서의 갈등과 잡음, 모(母)정당의 의원 꿔주기 현상에 이어 부실과 졸속 공약으로 또다시 비판을 받고 있다. 어떤 위성정당은 공약을 제출했다가 모정당의 입장과 다르다는 이유로 하루도 안 되어 철회하고 다시 모정당의 공약을 베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급조 비례 정당은 아직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10대 공약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부실 공약은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이다. 새로 개정된 선거제도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면서 의석수 확보를 위해 급조된 위성정당들이 제대로 된 공약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무리이다. 창당 당시부터 분명한 정책 비전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아닌 ‘꼼수’ 정당인 데다 모정당의 눈치와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성’ 정당이기 때문이다. 시간에 쫓겨 만들어진 ‘급조’ 정당인 만큼 제대로 된 공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비전’도 없고, ‘독립성’도 없고, 그리고 ‘시간’도 없는 것이다.

세계일보

김욱 배재대 교수·정치학


진정한 정책선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정당들이 오랜 내부 숙의를 거쳐 공약을 만들어 발표하고, 그다음에 유권자들이 이러한 공약에 근거하여 표를 던져야 한다. 이전 선거에서는 그래도 첫 번째 조건은 대체로 만족하였기에 두 번째 조건, 즉 유권자의 정책에 근거한 투표를 강조해 왔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정책선거의 전제 조건조차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결국 유권자들은 정당의 이름도 잘 모르고, 정당의 공약도 모르면서, 표를 던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발생시킨 가장 큰 주범은 물론 정치권이다. 소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때부터 위성정당의 탄생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석수가 충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구 의석과 비례 의석의 비율이 이상적으로는 1:1, 적어도 6:4나 7:3 정도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현역 의원들의 반발 때문에 지역구 의석도 줄이지 못하고 여론의 눈치를 보며 비례 의석도 늘리지 못한 상태에서 약 5:1의 비율을 가지고 무리하게 이 제도를 도입했으니, 이러한 꼼수와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 충분히 예상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야 거대정당들의 위성정당 만들기를 허용한 선관위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문제는 단순히 법률 해석의 문제가 아니고, 민주정치와 선거의 원리 측면에서 바라보아야만 할 문제이다. 선관위가 정치적 판단에는 지나치게 몸을 사리면서 법률적 해석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선관위가 이제 와서 모정당과 위성정당의 공동선거 운동과 공동 현수막 홍보가 위법이라는 판단을 내놓고 있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일부 시민단체와 언론들이 이러한 정치권의 꼼수 행태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지만, 많은 유권자에게는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고 있다. 사실 일반 유권자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그 취지(정당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의 비례성 확보)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위성정당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소위 여론주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학계, 시민단체, 언론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알려야 하는데,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이러한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민주정치에서 선거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개학까지 미루어지는 극심한 위기 상황에서도 선거가 실시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위기 속에서도 제대로 된 선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과 선택이 중요하다. 이번 선거는 극심한 선거 무관심, 매우 낮은 투표율, 그리고 여야 거대정당의 꼼수 정치 등으로 민주화 이후 실시된 선거 중 최악의 선거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방지하는 것은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김욱 배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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