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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김병수의마음치유] 팬데믹 상황에서 자녀와 함께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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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보다 육아가 더 무섭다는 주부 / 변화에 적응하도록 삶의 방식 바꿔야

세계일보

전화기 너머 아이들이 소리친다. “엄마!” 하고 부르고 “와!” 하고 고함치며 두세 명의 아이들 목소리가 엉켜서 수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선생님도 이 소리 들리시죠. 한 달 전만 해도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화를 냈는데 이제는 포기했어요.” 아이 셋을 키우는 삼십대 주부다.

그렇지 않아도 육아에 지쳐서 우울증이 생겼는데, 지난 한 달 동안 집 안에서 세 아이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육아가 더 무섭다고 했다. 예전에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를 일주일에 한두 번씩 불렀는데 최근에는 이마저도 끊었다. 남편이 운영하는 식당 매출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쳤고, 가족 외에 사람이 집으로 바이러스를 옮겨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혼자서 세 아이의 삼시 세끼를 챙기고, 같이 놀아주고, 씻기고 재우고 공부시키고 있다. 외출을 할 수 없으니 집이 놀이터다.

조용한 시간이 없다. “온라인 개학을 한다고 하는데 초등학생 아이가 모니터를 보며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못 해요. 엄마인 내가 옆에서 끼고 가르쳐야 해요. 내가 이걸 다해야 하는데…. 너무 답답해요”라고 한숨을 내쉰다. 나는 이런저런 조언을 하려다 속으로 꿀꺽 삼키고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어떤 말을 해도 위안이 될 것 같지가 않네요”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렇죠. 선생님이라도 저 같은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을 거예요.” 그래도 조금만 견뎌 보자고, 지치지 않도록 건강도 잘 챙기시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정부에서 한시적으로 허용해 준 전화 상담을 하고 기존에 복용하던 항우울제 용량을 조금 늘려서 처방전을 발행했다. 그녀가 불러준 팩스 번호로 처방전을 발송해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능숙하게 헤쳐 나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구라도 짜증과 우울함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기한이 정해져 있다면 참아보겠는데, 끝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고 불안하다. 심리상담이나 겉핥기 조언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불길하게 들리겠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종식되지 않고 우리는 팬데믹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닥칠 새로운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당연히 육아도 달라져야 한다. “아직 어리니까, 약하니까 엄마인 내가 다 챙겨야 한다”는 완벽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상에서 위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예상치 못한 위기가 앞으로 또다시 우리 삶을 흔들어놓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아이들이 정해진 루트를 잘 따라가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고 자립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간단한 집안일부터 아이에게 맡겨라. 어린 자녀에게는 빨래 걷고 개는 일부터 시켜라. 고학년이라면 설거지와 간단한 요리를 가르쳐라. 자녀가 “나는 공부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도 필수라는 인식을 갖게 해야 한다. 독립심을 키울 절호의 기회다.

지금은 역사적인 시간이다. 코로나19의 세계 상황이 어떤지 자녀와 함께 뉴스를 보고 그것에 대한 저널을 남겨보자. 갑자기 달라져 버린 세상에서 나와 우리 가족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 적어두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가족이 함께 대화하고 기록해둔다. 누가 알겠는가. 안네의 일기처럼 후세에 길이 남을지.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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