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바디우 지음, 민음사 펴냄
공군 군악대 소속의 병장이던 겨울밤, 기름진 석탄가루가 진득한 난로는 규정에 따라 21시부터 꺼야 했다. 일산화탄소 중독의 위험 때문에 추위 앞에 체념한 그때, 한 병사가 “어둠, 그것은 어둠일 뿐! 더 이상 희망은 없어”라며 샹송을 읊조린다. 여덟 살 때는 빛이 들지 않는 복도에 아이 둘을 서 있게 하는 ‘한밤의 소리’ 게임에서 진정한 어둠을 경험했고, 열 살엔 고지대 농장에서 우유를 가져오라는 밤길 심부름에서 종아리를 물 것 같은 검은 개에 대한 두려움에 떨었던 적 있다.
시시콜콜한 고백의 주인공은 프랑스 현대철학을 대표하는 알랭 바디우다. ‘진리와 혁명의 철학자’로 불리는 그가 검정(noir)이라는 단어를 화두로 인생 첫 자전적 에세이를 썼다. 잉크, 음흉함, 암흑의 군주, 검은 대륙, 적과 흑, 블랙유머, 암흑물질, 검은 표범, 흑인 등 저자가 ‘검은색’ 앞에 떠올리는 21가지의 찬란한 사유가 담겼다. 글은 짤막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검정의 속성만큼이나 깊다.
바디우는 검은색에서 변증법을 발견한다. 그가 말하는 ‘검은색의 변증법’은 무색(無色)으로서의 검은색과 모든 색의 뒤섞임인 흰색 사이의 내적 논리다. ‘백인들의 발명품’이라는 제목이 달린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말한다. “인간이 바라는 보편적 차원에서는 백인도 흑인도 결코 실존할 수 없다. 인류는 그 자체로 색깔이 없다.” 1만2,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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