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너 미터 지음·글항아리 펴냄
유럽 중심 2차 대전사에 의문 제기
일본군 발 묶으면서 중국 큰 희생
승리에도 서구와 공산정권 저평가
2차 세계대전은 언제 어디서 시작됐는가. 이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 시계를 1939년 9월 1일로 되돌려 히틀러의 탱크 부대가 폴란드 국경을 넘어서는 장면을 떠올린다. 하지만 인도 출신의 영국 역사학자인 래너 미터 옥스퍼드대 교수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는다. 미터 교수는 그보다 2년 2개월 앞선 1937년 7월 7일 중국 베이징 근교 루거우차오에서 벌어진 중국군과 일본군의 총격전을 지목한다. 2차 대전을 일으킨 주범은 독일·이탈리아·일본의 3각 동맹이었고, 이들 중 한 국가가 시작한 첫 번째 싸움이었다는 점에서다. 소장 학자의 시각이기는 하지만 소홀히 여기기는 어렵다. 그가 이 같은 세간의 반응을 미리 예상하고 방대한 역사서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미터 교수의 저서 ‘중일전쟁 : 역사가 망각한 그들 1937~1945’는 그동안 서구의 시각에서 기술돼온 제2차 세계대전사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한 책이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 벌어진 중일전쟁은 일본군을 중국에 묶어두면서 미국과 영국, 소련 연합군이 독일과 전쟁에 승리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서구는 중국의 기여를 과소평가했다.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마오쩌둥이 중국 권력을 잡으면서 중일전쟁의 중요성은 중국 내에서도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됐다. 마오 정권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중일 전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장제스의 성과를 깎아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 역시 중일 전쟁에 참여하긴 했지만 중국 서북부의 농촌지대를 전전하는 소규모 무리를 이끌었을 뿐이다. 장제스가 치열한 전투를 거듭하는 동안 마오쩌둥은 통제 지역을 점점 넓혀 갔고, 장제스는 작은 섬 대만으로 내몰리면서 부피하고 무능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에 갇혀 버렸다.
전쟁 과정에서 치른 중국인들의 엄청난 희생 역시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중일전쟁으로 인한 중국 측 피해의 공식 집계는 없지만, 저자는 8년 동안 약 1,500만 명이 죽었다고 추산한다. 베이징과 상하이, 난징, 우한, 충칭 등 주요 도시의 근대적 성과물이 대부분 파괴됐다.
저자는 미국과 소련, 영국과 더불어 전시 4대 강국 중 하나였던 중국의 지위 또한 회복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1941년 독일을 침공을 받은 소련이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긴 했지만 중국이 겪어야 했던 피해와 근본적 변화에는 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2013년 처음 출간한 이 책이 학계와 언론으로부터 크게 주목받으면서 일약 세계적 학자로 부상했다.
역자는 국방대 교수 기세찬과 공무원이자 전쟁사 전문 블로거인 권성욱이다. 이들은 원서를 단순히 번역만 한 게 아니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역자 주석을 괄목할 만큼 꼼꼼하게 달았다. 2만5,000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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