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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김형석의 100세일기] ‘국보 1호’ 양주동 박사… 늦게 철드는 사람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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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사람 복이 많은 셈이다. 첫 직장이었던 서울 중앙학교에서는 김성수 밑에서 일했다. 연세대에 와서는 백낙준, 정석해, 최현배, 김윤경, 양주동 같은 대선배들과 함께 지냈다. 그중에서 인간미가 풍부하고 정이 통했던 사람은 이상하게도 양주동 선생이다.

그는 내가 중학생 때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였고 향가 연구로 일본과 한국학계에서 인정받는 수재였다. 항상 자신을 '대한민국 국보 1호'라고 자랑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때로는 어린애 같은 순진함을 지니고 살았다.

조선일보

일러스트= 김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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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는 흥사단이 주관하는 금요 강좌가 있었다. 저명인사들이 강사로 초청받곤 했다. 양주동 선생은 언젠가 흥사단에서 초빙했더니 "강사료가 얼마냐"고 물었다. 60분씩 강연을 하는데 3만원이라고 설명한 직원에게 "내가 두 시간 하면 6만원을 주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겠다고 양해가 되었다.

강연을 끝낸 양 선생이 "나 빨리 갈 데가 있으니까 강사료만 달라"고 재촉했다. 담당자가 "강사료는 사모님이 조금 전에 받아 가셨는데요"라고 했다. 낙심한 양 선생이 "그러면 난 헛수고한 셈이 아니야. 왜 나한테 허락도 안 받고 주었어? 6만원 다 줬어? 내가 3만원이라고 했는데…"라면서 실망스러워했다는 얘기다.

후배인 사학과 이 교수가 양 선생 옆집에 살았다. 한번은 추운 날씬데 선생이 대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마누라가 뿔이 났어" "왜요?" "강사료로 한잔했거든" "그러면 우리 집에 들어와서 쉬세요." "아냐, 그랬다간 오늘 못 들어간다고…." 그래서 걱정하면서도 웃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또 다른 얘기다. 안병욱 선생이 나에게 "양주동 선생이 젊어서 유도선수였어요?"라고 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겠어요? 내가 잘 아는데" "아니야. 어디서 강연을 하면서 '내가 이래 보여도 젊었을 때는 유도가 4단이었어' 라고 했대요"라는 것이다. 후에 내가 양 선생에게 "선생님, 대학생 때 유도를 했어요?" 물었다. "내가 유도는 무슨 유도를 해?"라며 놀라는 것이다. "학생들한테 강연을 하면서 그랬다면서요?" 내가 재차 물었다. 선생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오~ 내가 한번 후라이 까본 거지(허풍이었다는 뜻이다). 그걸 믿는 학생들이 바보지. 내가 언제 유도를 했겠어"라면서 "김 선생도 그렇게 믿었어?"라고 반문했다.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는 눈치였다. 안병욱 선생에게서 들었다고 했더니, "안 교수는 내 대학 후배인데 그런 걸 물어봐"라면서 '안 교수가 철이 없구먼'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일화는 수없이 많다. 그 양 박사를 일본에서는 일본학자를 앞지른 향가 연구가로 높이 평가해 주었다. 왜 그런지 나는 양 선생을 잊지 못하고 있다. 양 선생이 제자 격인 나를 믿어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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