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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나 키울 때는 안그랬으면서… 엄마는 왜 '도덕 교과서'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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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지긋지긋하면서도 뜨끈뜨끈한, 세상 만만하면서도 위태위태한 엄마와 딸의 관계. 감염병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안전 거리는 2m라는데, 모녀간 말다툼을 예방하는 적정 거리는 얼마일까요? 미안하다, 고맙다 말 없이도 미안함과 고마움의 비말이 전파되는 진심의 거리는 몇 m인가요? 홍여사

조선일보

일러스트= 안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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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온종일 집에 갇혀 있자니,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왜 이렇게 고된가요?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는 큰애와 걸핏하면 엄마~ 하고 불러대는 둘째. 게다가 돌아서면 금방 다가오는 하루 세끼 식사. 내가 낳은 자식들인데도 애들 얼굴을 보면 한숨이 나오니, 내가 엄마 맞나 싶으면서 동시에 예전 어머니들은 참 대단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풍족하지도 않은 형편에, 요즘처럼 다양한 간편식과 학원의 도움도 없이 삼 남매, 사 남매씩 어떻게 손수 챙기셨는지…. 친정 엄마에게 전화라도 걸어 엄마 참 고생 많으셨다는 말을 하고 싶을 때가 잦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타이밍이지요. 우리는 워낙 타이밍이 안 맞는, 엇박자 모녀입니다. 오늘은 이따가 엄마에게 전화해야겠다 싶으면, 그새를 참지 못하고 엄마가 먼저 전화를 겁니다. 그러고는 서운한 기색을 감추는 듯 드러내며 말씀하시죠. 넌 혼자 있는 엄마가 궁금하지도 않으냐? 특히 요즘은 바이러스 때문에 제가 일을 쉬고 집에 있으니, 엄마의 전화가 더 잦습니다. 이틀에 한 번, 아니 거의 매일 출석 체크 하듯 전화를 하시네요. 그때마다 내가 먼저 전화하지 못해 미안한 기분이 드니, 내일은 기필코 아침에 전화를 걸리라 마음먹지만 매번 엄마에게 선수를 빼앗깁니다. 오늘 아침엔 평소보다 더 이른 시각에 전화벨이 울렸고, 받아보니 역시 또 엄마였습니다.

"너 걱정할까 봐 일찍 전화했다. 나 열 떨어졌어."

"열? 아, 열…."

그러고 보니 어제 오후의 통화가 생각났습니다. 37도 3부의 미열이 있다고 불안해하던 엄마. 죄송하게도 애들 뒤치다꺼리하다 보니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그럼 이제라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척하며 어머, 다행이다라고 하면 될 텐데, 성격상 또 그런 호들갑은 못 떨지요. 나의 시큰둥한 반응에 실망했는지 엄마는 엄마대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그건 그렇고, 너 어쩔 거니? 큰애 학원 안 보낼 거지?"

"글쎄, 생각 좀 해 봐야지."

"어머, 얘 좀 봐. 지금 이 시국에 공부가 대수니? 공부 일등해도 건강 잃으면 소용없다."

"그렇다고 중학생을 마냥 놀릴 수도 없잖아."

엄마는 혀를 차고 한숨을 쉬며 딸의 '무개념'을 한탄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딸은 더 모르는 척, 엄마를 불안케 할 소리만 늘어놓지요. 사실 이건 일종의 어깃장입니다. 속으로는 학원에 안 보낼 작정이면서, 엄마가 원하는 속 시원한 대답을 일부러 안 하는 겁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엄마와 대화하다 보면, 이렇게 슬그머니 심술이 날 때가 있습니다. 나를 아이 취급하며 이래라저래라 할 때, 또는 내가 기억 못 하는 줄 알고 과거의 일을 자기 중심적으로 미화할 때, 그런 심술이 일어납니다. 사실 우리 엄마는 건강보다 공부가 우선인 열혈 엄마였습니다. 엄마일 때의 엄마는 자식들에게 가차없고 엄격했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했고, 남의 집 자식들과의 치사한 비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엄마가 할머니가 되고는 갑자기 도덕 교과서 같은 얘기들을 하는 겁니다. 아이에게 숨 쉴 자유를 좀 주라느니, 착하게만 자라면 다 잘될 거라 믿으라느니 합니다. 당신은 전혀 그런 엄마가 아니었으면서….

엄마와 나 사이에 감도는 어색한 침묵을 어떻게 깨야 할지 몰라 괜히 딴소리를 꺼내려는 순간, 갑자기 거실에서 꽥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보나 마나 뻔합니다. 두 아이가 그새 싸움이 붙은 거겠죠. 나는 휴대전화를 든 채 거실로 달려나갔습니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저마다 소리 지르며 상대방의 만행을 고합니다. 그러나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벌어지는 상황에 나는 더 들을 것도 없이 즉결심판을 내렸지요. 잘한다, 잘해! 누나가 돼가지고 네 살이나 어린 동생하고 수준이 똑같네. 각자 방으로 들어가!

애들은 툴툴대며 방문을 닫고 들어갔습니다. 다만 한 시간이라도 각자 방에서 책이나 읽길 바라며 나는 쥐고 있던 휴대전화를 다시 귀에 갖다 댔지요. 엄마, 미안해. 애들이 자꾸 싸우네. 그러자 엄마는 다 들었다며, 예의 도덕책 같은 훈수를 또 늘어놓으시네요.

"얘, 너, 큰애한테 그러는 거 아니다. 걔가 다 큰 거 같지? 불과 열다섯 살이야. 누나니까 참으라는 말이 걔한테는 얼마나 가혹한 말이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억울하겠어?"

엄마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엄마야말로 맏딸인 제게 어떻게 했던가요? 네가 참아라, 네가 대신해줘라, 네가 양보해라. 너는 다 컸잖니? 그 시절 엄마는 나를 거의 양육의 조력자처럼 대했습니다. 그래놓고 지금은 손녀의 입장을 두둔하며 교육학 박사님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 말을 다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대신 매정한 말로 전화를 끊어버렸죠. 엄마. 내 애들은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마는 엄마 건강이나 챙기셔.

물론 그렇게 전화를 끊고 온종일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후회라기보다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죠. 왜 엄마와 나는 건강한 거리 두기가 안 될까? 엄마는 맹목적으로 다가오려 하고, 나는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 하고. 늙으신 엄마가 좀 틀린 말씀을 하셔도 내가 참으면 될 텐데, 그게 왜 이리 힘든 걸까? 역시 엄마 앞에 서면 나는 아직 철부지 아이인 걸까?

삑 삑 삑, 삐비빅!

부실한 반찬들로 한심한 저녁상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언제 나갔는지도 몰랐던 딸이 웬 꾸러미를 들고 들어옵니다.

"방금 할머니가 전화하셔서 내려가 봤는데, 이것만 주고 가셨어."

풀어보니 꾸러미 속엔 엄마가 만든 맛깔스러운 반찬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손녀가 잘 먹는 코다리찜과 손자가 좋아하는 연근조림, 사위가 좋아하는 장모님표 파김치. 그리고 그 찬합들 사이에 쪽지 한 장이 끼워져 있네요. 설마 엄마가 내게 편지를 쓰신 걸까? 너 어쩌면 엄마한테 그렇게 매정하냐고 글월로 따지고 계신 걸까? 그러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엄마의 꼭꼭 눌러쓴 볼펜 글씨는 딸이 아닌 손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큰손녀 연재야. 집에만 갇혀 있자니 좀이 쑤시고 짜증이 나지? 그래도 동생이랑 싸우지 말고 엄마 말씀 잘 들어라. 네 엄마는 어릴 때 동생들을 다 거두고 돌보는 큰딸이었단다. 그러니 지금 삼촌, 이모들이 네 엄마 말을 그렇게 잘 듣는 거야. 네가 동생을 이해해주면 엄마가 다 아신다. 모를 것 같아도 다 알아. 딸한테 미안한 줄도 알고 고마운 줄도 다 안단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엄마들은 다 안단다."

내 것도 아닌 편지를 훔쳐 읽고 나는 눈물 한 방울을 흘리고야 말았습니다. 아, 정말이지 엄마와는 거리 두기가 여간해 안 됩니다.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결국은 엄마의 주름진 손바닥 위이니 말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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