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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역대 경제수장에게 듣는다] (1)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기업이 안 쓰러져야 V자 반등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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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71)은 국내 손꼽히는 국제금융통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민간 출신으로 첫 금융당국 수장을 맡았다. 1929년 세계공황 이후 최대 세계 경제위기라는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를 맞아 은행 자본 확충, 시장 안정대책, 중소기업 지원 패스트트랙 등 전례 없는 대책을 내놨다. 금융위의 적절한 대책으로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무난하게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겼다고 평가받는다. 전광우 이사장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금융뿐 아니라 실물경제 타격이 크다는 점에서 더욱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경이코노미

1949년생/ 서울대 경제학 학사/ 미 인디애나대 경제학 석사, 경영학 석·박사/ 미 미시간주립대 경영학 교수/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외교통상부 국제금융대사/ 포스코 이사회 의장/ 금융위원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 연세대 경제대학원 석좌교수/ 2019년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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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코로나19 사태가 지난 위기와 어떻게 다른가.

A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모두 금융에서 발원했다. 지금 위기는 전염병에서 시작됐다. 전염을 막으려다 보니 경제활동을 멈춰 세워야만 한다. 과거 금융위기는 재정정책을 쓰고, 유동성을 풀면서 경제를 움직여 해법을 찾았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 이동을 막아버렸다. 경제가 살아나려면 ‘모빌리티’가 중요한데 이를 막았으니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금융뿐 아니라 실물이 크게 타격받을 수밖에 없다.

Q. 경제가 얼마나 멈춰 설 것 같나.

A 전염병을 잡을 백신을 개발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그런데 언제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단기 충격으로 끝날지, 장기적인 불황으로 이어질지 예단하기가 어렵다. 대책을 마련하는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다만, 하반기 바닥을 기대해본다. 발원지인 중국은 1분기 경제가 최악일 것이다. 상반기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기 힘들 수 있다. 이제 정점을 지났다고 여겨지는 한국은 2분기, 미국은 3분기가 최악일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부활절(4월 12일) 전 회복을 희망했다. 전문가 견해를 고려하면 너무 빠르다. 지금부터 6개월이 중요하다.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미국이 회복하는 4분기쯤 전 세계가 반등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한국 경제 전망이 어두워졌다.

A S&P가 발간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은 올해 성장률이 마이너스 0.6%로 역성장할 것이라 밝혔다. S&P가 최근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1.1%로 하향 조정했는데 이를 또 낮췄다. 수출 중심 한국은 전 세계 경제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다. 기업 부실, 신용 경색이 나타나고 실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유통·항공·해운·관광은 말할 것도 없고 전체적으로 경제가 나빠질 수 있다. 몇 % 추락이라는 숫자를 따질 것 없이 생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Q. 과거 위기 때 한국은 비교적 조기 극복에 성공했다. 이번에도 V자 반등할 수 있을까.

A 2008년 금융위기 때 은행자본확충펀드 대책을 내놨는데 돈을 전부 쓰기 전 경제 활력이 생겨났다. 이번에 정부가 100조원 규모의 기업구호 긴급자원을 투입하겠다고 했는데 전례 없는 과감한 대책이라 평가한다. 다만 속도와 우선순위 문제가 남았다.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필요한 곳에 자금을 투여해야 한다. 자영업자 어려움을 잘 안다. 하지만 국가 경제 기둥이 되는 기업 살리기에 둔감해서는 절대 안 된다. 기업이 살아야 V자 반등이 가능해진다. 과거 위기 국면은 한국 경제가 그래도 크게 성장할 때였다. 기업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한국 경제가 살아났다. 그러나 저성장 시대로 돌입하며 한국 경제 ‘회복탄력성’이 크게 떨어졌다.

Q. 회복탄력성을 높이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A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이후 기업이 힘을 잃었다는 평가가 많다. 기업 규제가 많고 노동유연성이 낮다. 법인세 인상 등 기업에 우호적이지 않은 정책도 나왔다. 해외 투자자들이 현 정부의 반기업 정서를 투자 걸림돌로 언급하는 것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현 정부가 기업 활력을 높이는 정책에 좀 더 힘썼으면 한다. 위기 상황을 맞아 정부가 기업정책 기조를 바꾼다면 전화위복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Q. 지금 가장 필요한 대책이 무엇인가.

A 한국은행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매입이 그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꺼내지 않았던 회사채 매입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비상조치로 기업어음 매입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회사채까지 매입 범위를 넓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칙적으로 연준은 회사채를 매입할 수 없는데도 미국 재무부 승인과 보증을 받는 별도 기구로 간접 지원한다. 미국은 무제한 양적완화(QE)를 넘어 양적·질적완화(QQE)까지 단행하는 상황이다. 일본은행(BOJ) 역시 상장지수펀드(ETF) 매입액을 연간 6조엔에서 12조엔으로 2배 늘렸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CP와 회사채 직접 매입은 한은 재량 범위에서 벗어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 평상시라면 한국은행이 정부 견제 역할을 하며 인플레이션을 막는 데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비상 상황이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이 앞다퉈 전례 없는 대책을 마련하는데 한은이 소극적이어서는 곤란하다. 직접 지원이 불가능하다면 간접 지원 방식이라도 강구해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한은과 정책을 조율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이번 위기 때는 한은이 적극적으로 위기 극복에 나서주기를 기대한다.

Q. 주식시장이 요동친다. 과거 위기 사례처럼 다시 제자리를 찾아올 수 있을까.

A ‘다우존스 30%룰’이라는 말이 있다. 다우존스가 30%가량 하락하면 반등한다는 뜻이다. 실제 과거 위기 국면에서 이 같은 원칙이 작동했다. 이번에도 30% 정도 떨어진 이후 미국 주식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다만 미국 주식이 워낙 단기 급등한 터라 전고점을 찍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 증시도 V자 반등을 예단하기는 힘들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수요가 줄었고 공급망도 타격받는 등 외상이 깊다. 앞서 언급했듯 분위기를 바꾸려면 정부 친기업정책이 필요하다. 기업이 규제에 묶여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기업친화적인 자세로 돌아서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법인세다. 전 세계 주요 국가가 법인세를 내릴 때 한국만 올려 기업 부담이 늘어났다.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것이라 판단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셉 스티글리츠는 경제와 기업은 용수철 같아 과도하게 오래 눌려 있으면 복원력과 자생력을 잃는 것이 문제라 했다. 지난 3년 반시장적 정책으로 활력을 잃은 우리 기업을 살려내고 경제적 ‘기저질환’을 치유하기 위해 과감한 정책 기조 대변혁이 절실하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 사진 : 윤관식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 2052호 (2020.04.01~2020.04.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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