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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복지관 문 닫은지 두달, 중증장애 딸의 세상은 집이 전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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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생존기]

발달장애 큰딸 온종일 누워 지내

매주 받던 물리·언어치료도 중단

경기 일으켜 열 나도 병원서 꺼려

마스크 나눔 받아…나도 나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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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종합 복지관이 휴업에 들어가면서 A씨는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신애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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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복지관에서 언어 치료받을 시간인데요….”

경북 울진에 사는 김신애(50·여)씨는 6일 오후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첫째 딸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요즘 첫째 딸 A씨(23)는 종일 집에서 누워만 있다. 뇌 병변·지적장애에 기저질환인 뇌전증까지 앓고 있는 그는 홀로 식사를 해결할 수 없는 발달 장애인이다. 4인 가족 중 직장인 남편(54)과 대학생 둘째 딸(19)을 제외하면 A씨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김씨뿐이다. 딸을 돌보며 틈틈이 장애인 관련 강연을 나가는 것이 김씨의 일상이었다.



장애인 복지관 휴업에서 시작된 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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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해 장애인 부모회에서 진행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김신애씨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김씨 가족의 일상은 달라졌다. A씨가 집에만 있게 되면서 김씨의 강연은 물론 외출에도 제한이 걸렸다. 개강이 미뤄진 대학생 둘째 딸도 본가에 머물며 언니를 돌봤다.

첫째 딸이 다니던 장애인 종합 복지관이 문을 닫은 게 시작이었다. 평소 A씨는 어머니와 함께 이곳을 찾아 하루에 약 2시간 정도 물리·언어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월 경북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각종 시설이 휴업에 들어갔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도움이 필요했다. A씨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식사가 힘든 중증 질환자다. 위루관(복부에 구멍을 뚫어 위와 직접 연결하는 관)으로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 다행히 활동 지원사가 A씨 집을 찾는 것은 허용되면서 급한 불은 껐다. 현재 활동 지원사 1명이 오전 9시에 A씨 집을 방문해 오후 6시까지 목욕·식사 등을 돕고 있다. 그러나 활동 지원사 방문도 언제까지 지속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병원 찾지 못해 애태우던 순간들



김씨는 딸을 위해 평소에도 집을 소독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마스크·손 소독제 품귀현상이 일어났고 구매가 어려워졌다. 동사무소에 도움을 청했지만 “발달 장애인은 마스크 등이 우선 지급되는 취약계층에 속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정부에서 공적 마스크를 지급하기로 결정한 뒤에야 마스크 2장을 받을 수 있었다.

딸을 선뜻 병원에 데려가지 못해 애타던 순간도 있었다. 뇌전증을 앓고 있는 A씨는 종종 경기를 일으켰다. 경기 때문에 열이 올랐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발열 환자의 응급실 이용 등이 제한되면서 집에서 응급 처치를 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늘었다고 한다.



“온정의 손길 되돌려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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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이전 발달 장애인 A씨의 일상. 지금은 모두 중지됐다. [김신애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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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일상을 침범하기 전 김씨는 매주 화요일 딸을 데리고 읍내 시장을 찾았다. 매주 목요일에는 동네 도서관에 데려갔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모든 사회적 접촉이 중단됐다. A씨의 동선은 집으로 제한됐다.

“사회와 만나는 흔치 않은 순간이었어요. 딸 아이가 참 좋아했었는데….” 김씨는 딸이 사회적 활동을 못 하게 되면서 인지 기능이 퇴보되지 않을까 매일 걱정이라고 했다. 1주일에 한 번이라도 복지관의 순회치료를 요청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힘겨운 나날이지만 김씨는 다른 장애인 돌봄 가족에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2월에 마스크와 소독제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서울에 사는 장애인 돌봄 가족이 방역용품을 나눠준 덕분에 위기를 넘겼거든요.”

자신이 받은 온정의 손길을 나누고 싶다는 게 김씨의 뜻이다. 그는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돌봄 가족을 위한 조언도 전했다. “평소와 달리 장애인 가족과 24시간 붙어있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새 우울감에 빠질 수 있어요. 잠시라도 심리적 거리를 두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해요. 다들 힘든데 서로 도우며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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