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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마스크 만드는 난민들, 산소호흡기 개발하는 가자지구...코로나 사각지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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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아랍 터번 고유의 무늬가 들어간 마스크를 만들고 있는 레바논 팔레스타인 난민 |유튜브 미들이스트아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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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 후세인 알-마스리는 요즘 세르비아 남부 부야노바츠 난민촌에서 마스크를 만든다. 시리아 내전에 고향을 떠난 그는 터키, 그리스, 알바니아, 코소보를 거쳐 한달 반 전에 세르비아에 왔다. 집을 잃고 떠도는 신세지만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 마스크를 만든다. 알-마스리는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에 있는 중동전문매체 ‘미들이스트아이’에 “위기 상황에서 서로를 돕는 것이 인간 된 도리”라면서 “이게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라고 밝혔다. 그는 4년 전 시리아에서는 민간구조대 ‘하얀 헬멧’으로 활동했다. 의료진과 응급구조대가 부족한 시리아 내전 상황에서 ‘하얀 헬맷’은 11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

마스크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이란에서 재단사로 일했던 소헤일 하비비가 냈다. 하비비는 처음 손바느질로 면마스크를 제작했고 이후 세르비아 당국에서 재봉틀과 마스크 원단을 제공했다. 다른 난민들까지 동참하면서 난민들은 하루 500개의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 이들은 함께 생활하는 난민들은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운 세르비아 극빈층들에게도 마스크를 전하고 있다. 하비비는 “우리를 받아준 세르비아를 도울 방법을 고민하다가 마스크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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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레스보스섬에서 마스크를 만들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난민들. |Refugess_Gr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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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라는 보호처를 상실한 난민들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에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부 난민들은 코로나19 시대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고 가디언, 미들이스트아이 등 해외언론들이 최근 전했다. 이들은 마스크를 만들고, 산소호흡기를 개발하는 등 코로나19 시대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료물자 공급에 작게나마 힘을 보태려 애쓰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편견을 넘어선 이타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마스크 쟁탈전 등을 벌이는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행태와 대조된다.

레바논에서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마스크 제작에 나섰다. 터번을 만드는 마이크로화이버 소재로 마스크를 만들었다. 아랍 고유의 무늬가 들어간 마스크의 이름은 ‘예루살렘마스크’다. 이스라엘에 터전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정신도 담겨있다고 한다. 임시공장에서 하루 1만개 가량 생산되는 마스크는 난민은 물론 레바논 취약계층에게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그리스 난민촌에서도 아프가니스탄 여성 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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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삼 칼라프, 이스마일 섹헬라 등 가자지구 이슬람대학 공학 교수 2명은 150~200달러 비용으로 제작가능한 산소호흡기를 개발해 테스트하고 있다. |가자지구 이슬람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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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봉쇄로 고립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대학교수들이 주민들을 위한 산소호흡기를 만들었다. 에삼 칼라프, 이스마일 섹헬라 등 가자지구 이슬람대학 공학 교수 2명이 개발한 산소호흡기는 150~200달러 비용으로 제작가능하다. 5000만~5만 달러에 이르는 기성의 산소호흡기 보다 훨씬 저렴하다. 가자지구 주민은 200만명에 달하지만 산소호흡기는 56대로 턱없이 부족하다. 외부로부터 단절된 상태에서 마스크를 구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만든 산소호흡기는 주민들이 코로나19를 해처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대학 측은 팔레스타인 사업가들에게 자금을 지원받아 산소호흡기 100대를 제작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코로나19가 뒤덮은 세상에서 난민들이 겪는 어려움은 점점 커지고 있다. 예컨대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리스 모리스 캠프에는 2만명이 넘는 난민이 살고 있다. ‘물리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공간은 없다. 손 씻을 물도 부족하다.

그리스 리초사, 말라카사 난민 캠프에서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캠프 폐쇄도 이어지고 있다. 지중해 섬나라 ‘몰타’의 난민캠프에선 5일 확진자가 8명 발생해 약 1000명의 아프리카 난민들이 강제 격리됐다. 경제 활동마저 불가능해지면서 난민촌 내부 생존도 위협을 받게 됐다.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코로나 사각지대에 놓은 난민들에게 좀 더 따뜻한 시선과 도움의 손길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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