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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설왕설래] 코로나 흡연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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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15년 1월은 흡연자에게 ‘악몽의 달’이다. 담뱃값을 올렸다. 한 갑당 2500원에서 4500원으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런 말을 했다. “국민 건강을 위한 결단”이라고. “담배세를 올리면 세금 역진성이 발생한다”는 고상한 반론은 쇠귀에 경 읽기였다. 값을 올려서라도 국민 건강을 지키겠다는데 무슨 논리가 통할까.

국민 건강은 나아졌을까. 그런 것 같지 않다. 흡연자는 크게 줄지 않았다. 좋아진 것은 세수뿐이다. 이듬해 담배로 거둬들인 세금은 배나 불어 13조원에 달했다. 담배에는 온갖 ‘잡세’가 따라붙는다. 담배소비세 외에도 지방교육세, 개별소비세, 부가가치세, 건강증진부담금, 폐기물부담금…. 흡연자는 대가를 되돌려받을까. 흡연자를 위해 쓰는 돈은 200억원 남짓할 뿐이다. 그것도 금연보조금과 금연홍보비로. 혜택 하나 없이 무거운 세금만 무는 까닭에 자조섞인 농담이 오간다. “흡연자야말로 애국자”라고.

그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대학병원에서 흡연부스를 보고 나서다. 컨테이너박스로 만들어진 3평 남짓한 부스 주변에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다. ‘흡연은 부스 안에서!’ 그곳에서 대여섯 명이 모여 담배를 피운다. 마스크를 벗거나 턱에 걸친 채. 서울역 앞 흡연부스는 더욱 가관이다. 5∼6평 정도의 부스에는 하루 종일 20명 이상이 들어차 있다.

흡연자는 코로나19 고위험군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흡연자가 코로나에 감염되면 기저질환자처럼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흡연자가 심각한 증상을 보일 가능성은 비흡연자의 1.4배, 중증·사망에 이를 확률은 2.4배로 높아진다는 것. 중국 연구에서는 그 확률이 14배로 껑충 뛴다.

우리나라 흡연율은 성인 남성은 31.6%, 여성은 3.5%다. 흡연자는 줄잡아 600만명을 웃돈다. 이들은 흡연부스로 간다. 코로나19 고위험군이 옹기종기 모여 마스크조차 벗은 채 연기를 토하는 곳으로. 주말마다 종교집회를 여는 교회가 더 위험할까, 흡연부스가 더 위험할까. 흡연부스에 대한 정부 지침은 왜 없을까. 담배 피우는 사람은 코로나19에 감염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닐 텐데.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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