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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장경덕 칼럼] 진짜 잔인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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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병원 복도에서 울었다는 이탈리아 의사들 이야기를 들으면 누군들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을까. 참 잔인한 시절이다. 과학자들은 기도라도 하고 싶고 종교인들은 과학에 매달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와 사투를 벌이는 의사의 슬픔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다. 하지만 그들이 매 순간 맞닥뜨리는 고통스러운 딜레마는 짐작이 간다. 살려야 할 목숨보다 적은 산소호흡기는 누구에게 줄 것인가. 사랑하는 이에게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들. 그러나 의사는 냉혹한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치료에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큰 환자는 누구인가. 치료를 하면 누가 가장 오래 살 수 있는가.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 있을 겨를은 없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냉혹한 공리주의적 사고를 강요한다. 생명은 다 똑같이 존엄한 것이기에 어떤 저울질도 할 수 없다면 의사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는 산소호흡기 부족 사태를 겪지 않은 우리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일까. 의사들만 이런 딜레마에 직면할까. 그렇지 않다. 한국 경제 역시 바로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쓰러지는 기업과 노동자를 다 살릴 수 없다면 산소호흡기가 모자라는 의사처럼 냉정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 살리겠다'는 말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수사인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우리 앞에는 정말 잔인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우리는 먼저 방역을 위해 멈춰 세운 경제를 다시 돌릴 시점을 선택해야 한다. 완전한 치료제와 백신이 나올 때까지 공장과 가게와 학교 문을 닫아걸어 둘 수는 없다. 그렇다면 위험을 최소화하며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는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세대와 계층 간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다. 섣불리 방역에서 경제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면 치명률이 높은 고령자들이 위험해진다. 일상 복귀를 늦추면 일자리를 잃은 취약계층과 학습 기회를 놓친 미래 세대의 타격이 커진다. 기적을 바라며 기도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철저한 생활방역 실천과 치밀한 준비로 그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기업 회생 대책과 가계 재난 지원이야말로 '의사의 딜레마'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이는 산소호흡기처럼 한정된 재정과 금융 자원을 어느 기업과 가계에 배분할 것이냐의 문제다. 전 국민에게 현금을 뿌리자는 정치인들의 발상은 앞으로도 쓸 일이 많은 산소호흡기를 당장 경증 환자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뿌리고 보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위선적이고 무책임하다. 일자리를 지킨다며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을 무제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기저질환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할 환자를 무조건 살리겠다고 장담하는 희망고문과 무엇이 다른가.

물론 산소호흡기는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기업과 가계 지원도 시간을 벌면서 얼마든지 창의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이러스의 공포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노인과 청년, 수도권과 지방이 서로 담을 쌓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일깨운다. 사태가 진정되면 보수와 진보, 노와 사,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상생을 위한 '뉴딜'이 나와야 한다. 진흙탕 선거판에서는 난망한 일이다. 총선이 끝난 후에라도 지도자들이 그 해법을 찾는 데 치열하게 고민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전에 응급실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사의 발목을 잡는 것과 같은 일은 제발 하지 말기 바란다. 정부는 냉혹한 선택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낙관과 희망은 전략이 될 수 없다. 그 모든 도덕적 딜레마와 인간적인 고뇌에도 어쨌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의사와 같은 각오가 필요하다. 불가피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려면 고통 분담을 호소하며 설득해야 한다. 국가는 전쟁을 만들고 전쟁은 국가를 만든다. 우리는 코로나19와의 전쟁을 통해 어떤 국가를 만들어갈 것인가.

[장경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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