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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경제직필]전염병 위기와 연대의 다리 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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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도처에서 병원 시스템이 마비되고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전 세계가 아비규환이다. 보편적 국민건강보험을 갖추지 못한 미국은 세계의 패권국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가장 많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스페인에서는 공주가 사망하고 영국에서는 총리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경향신문

코로나19는 ‘실물’시장과 ‘금융’시장 모두에, 그리고 시장의 ‘공급’과 ‘수요’ 양쪽에 전대미문의 충격을 가하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현재의 상황을 그간의 어떤 경제위기보다 더 심각하게 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어떤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코로나 이후’의 세계 경제질서는 지난 반세기를 지배해 온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와는 상당히 다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무엇보다 그간 진행되어온 고삐 풀린 세계화와 금융 자유화에 대한 통렬한 반성, 공공의료의 확대 및 전국민건강보험의 확립 등은 세계적으로 논의가 확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시장과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인식도 변화할 것이다.

변화의 방향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그 방향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여부는 국민들의 사회적 연대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크게 의존할 것이다. 물리적으로 거리 두기를 하면서 사회적 연대의 다리 놓기는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사실 전염병이 경제와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가하고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 혁명적 사회변화를 가져온 역사적 사례는 많다. 14세기 유럽인들에게 엄청난 인적·물적·정신적 손실을 안겨준 흑사병이 대표적이다. 흑사병으로 노동력이 희소해지면서 실질임금이 크게 상승한 반면 지대는 하락하였다. 이로 인해 봉건영주의 경제적 지위는 약화하고 농촌 노동자의 협상력과 이동성은 강화되었고 종국엔 기계적 생산과 장거리 교역이 촉진되었다. 전염병이 봉건제를 해체하고 근대적 경제질서를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 촉진의 속도와 방향은 나라마다 달랐다.

현재의 위기 극복을 위해 단기적으로는 적극적 재정확장을 통해 공급 충격과 수요 충격에 ‘신속히’ 대응하는 것, 그리고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을 적절히 조합해 금융위기와 실물위기에 ‘동시’ 대응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출렁이는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도산을 막으며, 노동자들이 대량해고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선 시중에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게 시급하다. 정부가 양적 완화 정책을 적극 펴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하지만 정부는 재정정책엔 여전히 미온적이다. 재정정책을 소홀히 하면서 완화적 대출정책만 편성하는 건 정부부채 증가가 무서워 민간부채 증가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격이다. 거의 0%대의 실질금리하에서 정부부채 증가를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방역에서 전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는 한국은 경제정책에선 매우 소극적이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말레이시아 등이 경기부양정책으로 GDP의 10% 이상을 쏟아붓고 있는데 한국은 고작 1%대이다. 중국과 캐나다조차 3%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대량해고를 막기 위한 고용유지지원금에 대한 대폭 증액과 실업수당에 대한 증액도 필요하다. 지금 논의되는 긴급재난수당은 수요 측 충격에는 어느 정도 효과적이지만 공급 측 경제충격에 적절히 대응하기는 어렵다. 수당을 지급한다고 공장가동 중단이나 폐업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기업에는 해고를 금지하는 조처를 함께 시행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해고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해결책이 아니다.

시중유동성이 넘쳐나도 기업은 곧바로 생산적 투자를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사주 매입을 늘리거나 부동산 등 비생산적 부문에의 투자로 자금을 돌릴 확률도 높다. 정부는 이런 가능성에 대비하여 세밀한 모니터링을 계속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의 장기침체에 대응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당분간 세계 경제는 심각하면서도 장기적인 경제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 방안들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전 국민이 보험가입자가 되어 평상시에 보험료를 내고 사회재난 시에 보험금을 받는 ‘재난사회보험기금’의 설립도 검토해 볼 만하다. 현재 중구난방식으로 30여개의 재난기금이 존재하는데 이것들도 통합하여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추경 편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신속한 대응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우진 |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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