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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코로나19’ 확산 비상]‘된서리’ 먼저 맞은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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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격리시설 된 기숙사 싱가포르 풍골의 한 이주노동자 기숙사 안에서 지난 6일 한 노동자가 마스크를 쓴 채 이동하고 있다. 당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후 해당 기숙사를 격리시설로 지정했다. 싱가포르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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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지서 확진자 나오자

싱가포르 2만명 집단 격리

카타르도 집단 봉쇄 조치


불의한 처우에 비위생적

“감염 시한폭탄” 우려까지


경기침체, 실직도 잇따라

송금에 기댄 가족들 타격


세계 곳곳의 이주노동자들이 코로나19로 보건·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회안전망 밖에 있는 데다, 저임금 일자리군에 속해 경기침체의 화살을 가장 먼저 맞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에는 방글라데시나 인도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 약 20만명이 43곳의 기숙사에 살고 있다. 이들은 건설 현장에 나가 도로와 집을 짓고 공장에서 공산품을 만든다. 쓰레기를 치우고, 해산물을 잡는다. 저임금 일자리지만, 꼭 필요한 노동. 이주노동자들의 몫이다. 지난 6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이주노동자 기숙사 2곳에서 코로나19 확진자 91명이 나오면서 노동자 약 2만명이 기숙사에 집단 격리조치됐다.

국제앰네스티는 같은 날 성명을 내고 “기숙사의 비좁고 비위생적인 환경은 이주노동자들을 추가 감염의 위험에 노출시킨다”고 지적했다. 주유엔 싱가포르 대사를 지냈던 토미 코는 페이스북에 “이주노동자 기숙사는 시한폭탄 같았다. 싱가포르에서 꼭 필요한 존재인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는 제3세계 같았다. 불의한 처우 방식에 대해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썼다.

카타르에서도 지난달 11일 이주노동자 238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자 이주노동자 집단 거주지를 봉쇄했다. 수도 도하 외곽에 ‘산업단지’라 불리는 이 거주지엔 수십만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이들의 숙소는 비위생적인 데다 방 하나에 8~10명씩 모여 산다. 카타르에서는 남아시아와 동아프리카 출신의 이주노동자 200만명이 일하고 있다. 다수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인프라 조성을 위한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

앰네스티는 카타르·싱가포르의 사례를 들면서 “코로나19 대응을 명분으로 ‘취약계층 집단 격리’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며 “폐쇄된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는 코로나19 피해가 큰 크루즈선이나 감옥과 같아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기침체의 된서리를 먼저 맞은 것도 이주노동자들이다. 필리핀인 오시간 카세레스(47)는 8년 전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했다. 그는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매달 300달러(약 36만5000원)를 필리핀에 있는 딸 가족에게 보냈다. 카세레스는 “코로나19가 터지고 아무도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 당장 여기 임대료도 걱정이고,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은 어떡할지도 걱정”이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코로나19로 이주노동자가 실직 위기에 내몰렸고, 가난한 나라의 빈곤층이 또 다른 희생자가 될 것”이라고 지난 6일 보도했다. 세계 크루즈 업계에서 일하는 필리핀인 선원은 32만5000명(2018년)이다. 최근 크루즈 운항이 중단되면서 수백명이 실업 상태에 빠졌다고 WP는 전했다. 이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그들의 지원을 기다리는 고국의 가족들도 타격을 받는다.

연간 200만명의 이주 필리핀 노동자들이 가족·친척 등에게 보내는 돈(335억달러·약 40조원)은 201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로 들어오는 해외 송금은 GDP의 약 20%를 차지한다. 세계은행의 이주 및 해외 송금 전문가인 딜립 라타는 “코로나19로 부국들도 타격을 받을 것이고 빈국으로의 세계 송금 규모는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며 “해외 송금이 끊기면 저소득 국가의 빈곤층은 영양 부실, 건강 악화, 교육의 기회 박탈과 같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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