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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일본인들에게 한국인 강제동원 역사 알리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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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카와 ‘인간의 보루’ 한국어판

‘나고야 소송 지원회’ 다카하시 등

일본인과 근로정신대 유족 교류 담아


한겨레

<인간의 보루>(소명출판) 저자 야마카와 슈헤이(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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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으로서 과거 강제노동의 역사를 너무 모르고 있었어요. 작가로서 사명감으로 기록했어요.”

<인간의 보루-조선여자근로정신대 유족과의 교류>(소명출판)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낸 야마카와 슈헤이(85)는 9일 “제주에 갔다가 우연히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유족을 만난 게 삶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일본 주택산업계 회사원이었던 그는 1992년 골프 여행을 왔다가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유족 고 김중곤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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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카와 슈헤이(85)가 쓴 <인간의 보루>.


김씨의 여동생은 1944년 5월께 나고야항공제작소로 강제동원됐다가 그해 12월 발생한 도난카이 대지진 때 목숨을 잃었던 한국인 10대 ‘소녀’ 6명 중 1명이다. 김씨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구사일생으로 고향에 돌아온 여동생의 친구(2001년 사망)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저자는 김씨의 소개로 다카하시 마코토(77)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나고야 소송 지원회) 공동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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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다카하시 마코토는 1988년 고교 역사교사로 재직하던 중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역사를 알게 된 뒤 도난카이 지진 때 희생당한 한국인 소녀 6명을 추모하는 위령비를 건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어 나고야 소송지원회를 꾸려 2007년 7월부터 금요일마다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근로정신대 강제동원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촉구하는 ‘금요행동’을 해왔다. 저자는 이 단체에 가입한 뒤 2007년 7월부터 2010년 7월까지 1차 금요행동 145회 중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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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카와 슈헤이가 2010년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홍보물을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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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다카하시 마코토 등 일본인들이 어떻게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등을 책에 촘촘히 담았다. 도난카이 지진 희생자 추도비 건립과 시민단체 ‘나고야 소송 지원회’ 설립 경위, 1999~2008년 일본 법정에서 진행됐던 손해 배상 소송 과정 등도 썼다. 이 책은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2007년 5월 나고야 고등재판소에서 패소하고 이듬해 초 발간됐다가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의 노력으로 한국어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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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카와 슈헤이(85·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다카하시 마코토(맨오른쪽) 나고야 소송지원회 공동대표 등이 2010년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고 김중곤(왼쪽에서 두번째)씨 등 한국인들과 근로정신대 역사를 알리는 한·일연대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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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심장병 투병중인 저자는 과거 금요행동 때마다 두 장의 ‘서류’를 지니고 다녔다. 한 장엔 길거리에서 쓰러질 것에 대비해 가족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또 한장은 미쓰비시중공업 사장에게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사죄하고 배상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의 ‘유서’였다. 투병 중이어서 거동이 불편한 저자는 “재판과정과 나고야 소송지원회의 활동을 기록하려고 뒤늦게 한일관계에 대해 공부하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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