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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기고] K-진단키트의 힘, 기초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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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지구 사회 시스템을 흔들어 세우며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우리 생활을 바꾸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2월 19일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지역사회 감염 확산이 급증했지만 신속하고 광범위한 진단, 사회적 거리 두기, 선진 의료시스템 덕분에 그 확산세가 누그러지고 있다. 방역 지침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의료진의 헌신이 이뤄낸 고통 속 성과다. 이제는 한국의 대응 방식과 진단, 방역 물품이 뒤늦게 재앙적 확산에 직면한 세계 여러 나라에 활용되고 도움이 되는 상황에 이르러 어려움 속에 격려가 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코로나19의 위력을 부인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 것은 과학자들이 제시한 확산 예측 모델이었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수백만 명이 죽을 수 있고 강력한 이동 통제를 하더라도 최소 10만명 이상 죽게 될 것이란 예측이었다. 그 그래프 앞에서 미국이 향후 매우 고통스러운 2주간을 맞을 것을 인정하는 그의 침울한 브리핑 사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수학, 통계학, 역학, 보건학 전문가들이 협업해 제시하는 예측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방역 정책 수립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한국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신속하고 정확한 바이러스 진단 능력이다. '보지 못하면 막지 못한다'는 경구처럼 정확한 진단을 통해 감염된 사람들을 골라내 격리시킬 수 있는 조치는 방역의 기본이다. 한국에서는 1월 20일 첫 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2주 만에 진단키트 1종이 식품의약품안전처 긴급승인을 받아 활용되기 시작했고,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2월 4종의 진단키트가 승인을 받았다. 이는 확산 초기부터 감염자를 빠르고 정확하게 구분해내는 데 혁혁한 기여를 했다.

진단키트를 개발한 기업들은 모두 대학 실험실에서 출발했거나 다년간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기초원천연구 지원을 받았다. 연구비 지원을 받은 3곳은 지난 수년간 지카바이러스 등 감염성 바이러스 진단을 위한 연구를 수행해 왔고 이번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체 정보가 알려지자마자 코로나19 진단키트를 개발했다.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정확한 진단키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비결은 수년간 다른 바이러스를 연구하며 쌓은 기술력과 플랫폼 덕분이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긍정적 평가를 받게 된 배경에는 2015년 메르스 사태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방역 정책과 연구개발이 함께 진일보한 점이 크게 자리한다. 코로나19는 올해 중 영구 종식되지 않을 것이고 재확산을 거듭할 확률이 크다. 앞으로 또 다른 종류의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해 우리를 위협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따라서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터득한 경험과 지혜, 아쉬움과 우려는 다음 위기 대응을 위해 하나도 버려져선 안 된다.

그러려면 과학자와 의료인, 방역 관련 정부 부처들이 적극적으로 협업해야 한다. 다행히 질병관리본부와 과학계, 기업, 범부처 간 협력으로 다양한 진단법과 치료제, 백신 개발을 위한 연구가 시작됐다. 이와 함께 수개월, 1년을 넘어 10년과 그 이후를 내다보는 연구 계획도 늦지 않게 기획돼야 한다. 과학자들이 부처 간, 국가 간 장벽을 넘어 협업할 수 있는 연구 플랫폼이 가동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를 또다시 흔들 미래의 불확실한 위기에 차분히 대비할 수 있다.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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