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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매경데스크] 4·15 총선 이전과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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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미래통합당의 총선 공천을 주관했던 이석연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을 얼마 전에 만났다. 65일에 걸친 공천 심사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린 뒤 "정치를 안 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말해주는 대답이었다. 변호사를 거쳐 감사원과 법제처에서 일했던 그가 정치권에 처음 참여해 느낀 소회는 비단 제1야당에만 해당되는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21대 총선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 사태라는 국가 재난 속에 치러졌기 때문일까. 이번 선거는 역대 총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열기가 뜨겁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차분하게' 선거전이 진행됐다. 그러나 솔직히 얘기하면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새로운 정책비전을 기대하며 '혹시나' 했던 유권자들은 '역시나' 하면서 등을 돌렸다. 벌써부터 역대 최저 투표율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숨 가쁘게 이어진 신당 창당과 후보 공천, 선거 레이스를 지켜보면서 필자가 품었던 의문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느냐"였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감히 내린 결론은 "국민을 위해서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적어도 이번 '총선판'을 보면 그랬다.

선거법 개정을 주도한 집권 여당은 비례 위성정당을 비난하더니 자신들도 슬쩍 범여권 비례 연합을 출범시켰다. 제1야당은 '사천 논란'을 겪은 끝에 공천관리위원장과 비례정당 대표가 중도 사퇴하는 참사를 겪었다. 호남에 기반을 둔 3개 야당이 통합해 신생 정당을 만들었고, 정치판을 떠났던 야당 대표가 귀국해 4년 전과 똑같은 이름의 정당을 창당했다. 그 과정에서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된 이유를 설명하는 정당은 없었다. '막말'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정치인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왔지만,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정치인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조국(전 법무장관), 윤석열(검찰총장), 추미애(현 법무장관), 유시민(노무현재단 이사장)….

선거 후반부에는 '낯익은' 이름들도 차례로 총선판에 소환됐다. 이른바 '진영 논리'를 만들어야 반사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 정치판에는 아직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사상 초유의 국난인 코로나19 사태가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대한민국 의회정치의 심장부인 여의도에서 벌어진 일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고 사회제도, 문화, 시민의식도 그에 맞춰 발전을 거듭해왔다. 미국이나 유럽보다 더 발전된 의료, IT를 앞세워 중세시대 흑사병같이 공포스러운 코로나19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정치만 20년 전, 30년 전과 같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닷새 뒤 총선이 끝나면 정치권에 많은 변화가 예고된다. 아쉽게도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변화가 아니라 과거에도 숱하게 봐왔던 익숙한 변화일 것이다.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지도부가 나오고 정치 신인에게 망신을 당한 중진 의원 가운데는 아예 정계를 떠나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공천에 탈락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의원들은 슬그머니 복당 시기를 저울질할 것이다. 2022년 3월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차기 후보들의 캠프 결성과 정치적 합종연횡도 뒤따를 것이다.

그래도 우리 유권자들은 5일 뒤에 투표장으로 나가야 한다. 정치 불신이 정치 외면으로 이어지면 결코 '구태 정치'를 바꿀 수 없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국민들을 더 무서워하라고 정치인들에게 분명하게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개인적인 희망이 있다면 차라리 '압승'하는 정당과 '폭망'하는 정당이 나왔으면 좋겠다. 쏠림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또 자기들 입맛에 맞춰 아전인수 해석을 내놓을 테니까.

[채수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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