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도
‘소통 방식의 변화’를 읽어내 창업
성장하지 못하면 사업 바로 접는
‘얄미운 창업자’가 벤처 기본 자질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권혁주 논설위원 |
자금이 거의 바닥났다. 투자 유치가 절실했다. 그러나 벤처 캐피털들은 이 회사를 눈에 두지 않았다. 하긴 인공지능(AI)·바이오·빅데이터·모빌리티·블록체인·게임처럼 소위 ‘핫(hot)’한 분야의 벤처가 아니었으니까. 사실 벤처란 표현이 약간은 어색한 업종이었다. 요식업, 그중에서도 피자였다.
점점 궁지에 몰릴 때 한 벤처 캐피털이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캡스톤파트너스’다. 숨통이 트인 1인용 화덕 피자 프랜차이즈인 ‘고피자’는 그 뒤 무럭무럭 성장했다. 국내 가맹점은 캡스톤파트너스가 투자했던 2018년 8월 18개에서 지금 70여 개로 늘었고, 싱가포르·인도 등 해외로까지 진출했다. 캡스톤파트너스는 대체 무얼 보고 고피자에 투자했던 것일까. 송은강(56) 대표를 만나 캡스톤파트너스의 투자 세계에 대해 물어봤다. ‘기억에 남는 투자’부터 얘기를 풀어나갔다. 송 대표가 제일 처음 꼽은 것은 역시 고피자였다.
세상이 변한다고 오프라인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잘 예견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가 오프라인 벤처에도 투자하는 이유다. 우상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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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고피자에는 왜 투자하게 됐나.
A : “창업자가 당시 서른도 안 됐는데 훨씬 나이 많은 본부장들과 함께 있었다. 경험 많은 본부장들은 대형 프랜차이즈 출신이었다. 이들이 뭘 보고 같이 일하겠나. 나는 ‘창업자가 능력 있다’고 느꼈다.”
Q : 그 정도로 성공을 담보할 수 있나.
A : “창업자에게 세상의 변화를 읽는 눈이 있었다. 1인 세태에 맞춰 ‘1인용 피자’를 들고 나왔다. 실행력도 강했다. 1인용 피자를 간단하게 구워낼 수 있는 소형 화덕을 직접 개발했다. 작은 공간에서 1인용 피자를 패스트푸드처럼 바로 조리해 내는 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생각하는 게 오직 ‘어떻게 피자 맛을 올리면서 간편하게 만들까’ 뿐이다. 게다가 돈도 아주 절약해 쓰더라. 기본적으로 벤처캐피털은 돈을 충분히 주기 어렵다. 아껴 쓰는 회사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돈이 떨어졌을 때 캡스톤파트너스가 줬다고 고마워하지만, 사실 우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투자했을 거다.”
Q : 외면받던 벤처에 투자한 사례가 또 있나.
A : “‘드라마 앤 컴퍼니’라는 업체가 있다. ‘리멤버’라는 명함관리 서비스 벤처다. 스마트폰이 막 퍼지던 2010년대 초반에 투자받겠다고 찾아왔다. 명함을 사람이 입력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창투사는 ‘말도 안 된다’며 거부했다더라. 그런데 논리가 재미있었다. ‘대한민국에 명함 쓰는 화이트 칼라가 최대 1500만명. 한장 입력에 100원이 들어도 15억원. 그다음엔 별로 돈 들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명함 인식 기술에 오류가 많아 오히려 사람이 입력하겠다는 데 신뢰가 갔다. 되겠다 싶어 투자했다.(※2017년 네이버가 드라마&컴퍼니를 인수해 캡스톤파트너스는 20배 투자수익을 냈다.)”
Q : 명함 입력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텐데.
A : “창업자가 애초부터 한국의 ‘링크트 인(인맥·경력 관리 소셜네트워크)’을 꿈꿨다. 명함은 엄청난 데이터다.”
Q : 마켓 컬리와 지역 중고거래 앱인 ‘당근마켓’에도 투자했다.
A : “마켓 컬리는 이제 워낙 유명하고…. 당근마켓은 창업자인 김재현 대표를 전부터 알았다. ‘쿠폰모아’란 서비스를 할 때 투자하려 했는데 늦었다. 그러다 제삼자가 쿠폰모아를 인수했고, 김 대표는 당근마켓을 차렸다. 그 전에 투자 못한 한을 당근마켓으로 풀었다. 그래도 속 시원하지는 않다. 우리가 원하는 만큼 투자하지 못했다. 당근마켓에 돈을 대겠다는 경쟁자가 많았다. 소프트뱅크도 그중에 하나였다.”
Q : 투자자를 고를 정도라니, 당근마켓은 몸값이 높은 것 같다.
A :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당근마켓 창업자처럼 스타트업을 차린 뒤 엑시트(상장이나 M&A 등을 통해 투자를 회수하는 것)까지 거쳐 본 친구들을 ‘연쇄창업자(serial enterpreneur)’라 부른다. 벤처 캐피털이 제일 선호하는 대상이다.”
Q : 캡스톤이 만난 기업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말을 했다고 하던데.
A : “회사가 의미 있는 성장을 하면 계속 투자한다는 뜻이다. 성장이 꼭 매출과 이익일 필요는 없다. 사용자와 이용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성장이다. 당근마켓(가입자 600만 명)이 그렇다. 매출·이익이 없는데도 회사 가치가 3000억원 정도라고 인정받고 있다.”
Q : 안 될 것 같을 때 회사를 접게 하는 것도 책임지는 태도 아닐까.
A : “그렇다. 성장이 없으면 접어야 한다. 한데 이상하게도 국내 창업자들은 ‘사업이란 오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칼을 한번 뽑았으면…’이다. 다 까먹고 마지막엔 부모·친구·친척 돈을 끌어들인다. 우리에게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결국엔 주변 볼 면목이 없으니 숨어 산다. 재기할 기회가 없다. 그래선 안 된다. ‘얄미운 창업자’가 돼야 한다.”
Q : 어떤 게 얄미운 창업자인가.
A : “‘아니다’ 생각하면 무리하지 않고 접는 창업자다. (※이러면 투자한 벤처 캐피털이 손해를 본다) 이런 친구들이 나중에 밥 사달라고 찾아와 새 사업 얘기를 하면 솔직히 나도 기분은 좋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 해야 한다.”
Q : 오버하지 않는 것, 얄미운 창업자가 되는 것이 벤처인의 덕목이란 말인가.
A : “덕목이라기보다 기본 자질이다.”
Q : 대학 연구실 창업에도 투자를 많이 했다.
A : “흔히 ‘벤처 캐피털은 기술에 관심이 많다’고들 하는데, 그게 아니다. 변화를 읽는 능력을 본다. 페이스북은 ‘소통 방식의 변화’를 읽고 창업한 회사다. 대학생이던 마크 저커버그의 능력이었다. 먹고, 놀고, 옷 입고, 물건을 사고, 소통하는 방법이 어떻게 바뀌는지 제일 잘 파악해내는 사람이 젊은 친구들이다. 그래서 대학생 창업이 대단히 중요하다. 또 하나, 변화의 큰 원동력이 인공지능이다. 거기에 제일 익숙한 사람들이 대학에 있다. 실험실 석·박사들이다. 컴퓨터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기본으로 공부한 친구들이다. 대학에서의 창업이 보물 창고다.”
Q : 창업보다 취업을 택하는 젊은이들이 훨씬 많은 게 현실이다.
A : “미국에서도 구글에 들어가면 동네에서 자랑한다. 하지만 바로 입사하기는 힘들다. 가만히 보면 창업했다가 구글이 그 회사를 인수하는 바람에 구글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그런 때가 됐다. 젊은이들이 직장으로 카카오·네이버·쿠팡을 선호한다고 한다. 입사 경쟁이 치열할 거다. ‘창업이 카카오·네이버에 입사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줬으면 한다.”
■ ‘뉴 칼라(new collar)’의 자격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는 “사람(창업자)이 투자의 중요한 요건”이라고 말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창업자가 뉴 칼라(new collar)일 것’이다. 뉴 칼라는 원래 지니 로메티 IBM 회장이 꺼내 든 개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기술직군’이다. 블루 칼라도, 화이트 칼라도 아니라는 뜻에서 ‘뉴 칼라’라고 했다.
송은강 대표는 뉴 칼라를 이와 다른 뜻으로 사용했다. 그는 ‘뉴 칼라의 5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기술이 바꿀 미래를 내다보는가 ▶디지털 리터러시가 있는가 ▶세상을 바꿀 의지가 있는가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하는가 ▶손잡고 일하는 법(협업)을 아는가 등이다. 이 5가지 조건은 국내 서적 『새로운 엘리트의 탄생』에 나온 내용이다. 『새로운 …』은 캡스톤파트너스가 투자한 지식 콘텐츠 벤처 ‘퍼블리’가 펴냈다.
5가지 조건 가운데 ‘디지털 리터러시’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이다. 문득 송 대표가 ‘기억에 남는 투자’로 꼽은 피자 프랜차이즈 ‘고피자’는 디지털 리터러시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송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피자를 만들 때 사람 손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게 반죽(도우)이다. 고피자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이 과정을 자동화하려 한다. 사람이 하는 반죽 과정을 인공지능이 관찰하고 학습해 로봇 손이 도우를 만들어내는 게 목표다.”
■ ◆캡스톤파트너스와 송은강 대표
창업한 지 3년 이내인 초기 벤처에 주로 투자한다. 총 투자운용자산은 2780억원이다. 송 대표는 삼성그룹과 MVP창투를 거쳐 2008년 캡스톤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학사, KAIST 전산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 공학계 석학들의 모임인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이다.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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