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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우리말 톺아보기] 경제적 언어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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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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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도 경제성의 원리가 적용된다. 즉 같은 의미라면 짧고 간단한 것이 좋다. 그러나 뭐든 적당해야 하듯, 이 원리도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생선(생일선물), 고터(고속버스터미널), 보배(보조배터리)처럼 ‘단어가 석 자만 넘으면 줄여버리는 시대’는 말하는 사람에겐 경제적이지만 듣는 사람으로서는 뜻을 이해하느라 헛심을 써야 하므로 비경제적이다.

언어의 경제성을 추구하고자 할 때 기본은 잉여를 제거하는 것이다. 여기서 잉여는 정보의 중복이나 과잉을 말한다. ‘역전(驛前) 앞’은 워낙 많이 지적되어 이젠 상투적인 예가 되었지만, 말을 아껴 쓸 구석은 아직 많다. 예를 들어 ‘홀로 고군분투하다’ ‘뒤로 후퇴하다’ ‘나도 역시 그렇다’ 등에서 ‘홀로, 뒤로, 역시’는 중복이므로 지우는 것이 경제적이다.

한편, ‘귀로 듣다’, ‘눈으로 보다’는 논리상 과잉에 해당하지만 쓰임에 따라선 잉여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보니…”에서 ‘내 눈으로’는 잉여일까, 강조일까? 마찬가지로 “그는 매우 엄청 돈이 많다”는 논리적으로는 중복이지만 강조를 의도한 것이라면 비경제적이라 나무랄 일은 아니다. 강조의 수사법에서까지 표준어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의도의 실패’가 걱정된다면 ‘무지무지’ 같은 표준어도 있다.

이런 칼럼은 정해진 분량을 지켜야 하므로 퇴고할 때 경제성을 자꾸 따져보게 된다. 얼마 전 “슬기와 지혜로 국난을 극복합시다”라는 말을 들었다. ‘슬기와 지혜’는 잉여적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둘을 거의 비슷하면서도 살짝 달리 설명하고 있었고, 어떤 사전은 동의어라 못박아 놓고 있었다. 경제성 추구는 말을 간결히 꾸미는 기능 외에도 끊임없이 말을 공부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강미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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