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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르포]착한 사업주 포기 "단돈 5만원이라도 쥐고 싶어"…고개숙인 사장님·지쳐가는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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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 19일 연장 방침에도 하나둘 영업 재개 잇따라

곱지 않은 시선 감수…휴업 연장하면 수입 0원 "어쩔수 없어"

지친 소비자 "이해는 한다"…비난 지적도 "거리두기 적극 동참해야"

아시아경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2주간 연장된 가운데 서울시청 인근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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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조유진 기자, 최신혜 기자, 이승진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에 협조하기 위해 가게 문을 2주간 닫았는데, 이제는 열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 같아서 열었습니다. 착한 사업주가 되고 싶지만 옆에 헬스장도 열고, 옆에 카페도 여는데 우리만 죽을 수는 없어서..." -대방동의 한 식당 사장


"더 버틸 수 없어서 특가 이벤트를 내세웠는데도 손님들이 매장에 들어 오지 않아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야 하는 것은 알지만, 마스크를 낀 손님 한명이라도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서초동의 한 화장품 브랜드숍 사장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19일까지 연장했지만, 생계 위협에 직면한자영업자들이 하나둘 영업을 재개하고 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참여 호소와 영업 재개에 따른 곱지 않은 시선에도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들은 영업을 재개해도 손님이 대폭 줄어 생계난은 여전하지만 휴업 연장보다는 낫다고 입을 모은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친 손님들의 발길을 최대한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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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림동에 위치한 한 식당. 영업은 하고 있지만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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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업주 포기하고 단돈 5만원 쥔다= 9일 저녁에 찾은 수원의 한 오리고기집. 2주간 굳게 닫혀있던 문에는 '영업을 시작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사장 권선영(가명·51) 씨는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인해 매장을 찾는 손님 발길이 뜸해지며 주말 기준 매출이 80%가량 떨어졌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기 위해 문을 닫았다"며 "건물주가 영업을 계속 쉬면 매장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까 우려하는 데다 수입이 0원인 상태를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이번주부터 문을 열었다"면서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여전히 매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영업 재개에 따른 불편한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가게 문을 여는 게 낫다"고 호소했다.


구로구에서 노래연습장을 운영하는 김미자(가명·48) 씨는 2주 동안 자발적 휴업에 들어갔다가 6일부터 문을 다시 열었다. 그는 "정부 취지에 동참하자는 의미에서 휴업했지만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휴업에 동참하는 착한 사업주는 못됐지만 단돈 5만원이라도 쥘 수 있어서 그나마 낫다"고 고개를 떨궜다.


일부 자치구는 자발적 휴업에 동참하는 자영업자들을 위해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이들은 보조금을 받는 것보다 영업하는 게 더 낫다고 입을 모았다. 동작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강우혁(가명·40) 씨는 "2주간 자발적 휴업을 마치고 영업을 재개했는데, 옳은 일은 아닌 것 같아 심경이 복잡하다"면서 "백화점도 세일을 하고, 다른 가게도 속속 영업을 하는데 우리만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점도 영업을 재개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이디야커피는 지난 2월 말 일평균 휴점 매장이 약 70곳에 달했지만 이달 둘째 주 기준 30개로 감소했다. 맘스터치도 매장의 약 30%가 대구·경북지역에 몰려 있어 다수 매장이 홀 주문을 중단하거나 자체 휴점했지만 최근 영업 재개를 시작한 곳이 많다. 맘스터치 관계자는 "수퍼바이저들과 논의 하에 영업을 재개하는 매장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표정 역시 사업주만큼 복잡하다. 느슨해진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이해는 된다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직장인 최용훈(35) 씨는 "계속 집밥을 먹다 너무 답답하고 지쳐 최근에 사적 모임을 갖고, 단골 식당에 방문을 했다"면서 "우리도 이렇게 답답하고 지쳐가는데, 장사를 하는 사람 마음은 오죽 하나 싶어 영업 재개를 이해는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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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이니스프리 매장.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손님맞이에 나섰지만, 매장은 텅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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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브랜드숍, 파격 행사에도 텅 빈 매장= 화장품·패션 매장들은 신상품을 출시하고, 파격 가격 할인 행사를 내세워 손님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찾아오는 손님이 거의 없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8일 오후에 찾은 강남대로변에 위치한 이니스프리 매장 안은 '제주 왕벚꽃 라인' 등 봄맞이 신제품 출시와 할인 행사를 알리는 팻말에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평소 북적이던 매장 밖은 잰걸음으로 스쳐지나가는 행인들만 드물게 눈에 띄었다. 드문드문 손님이 들어설 때마다 직원 강수연 씨는 "1만원 이상 구매시 5000원 할인하는 마이숍 이벤트를 진행중"이라며 이벤트 행사 내용을 알렸다.


이니스프리는 손님몰이를 위해 이벤트 혜택폭을 키우고 적극적으로 판촉활동에 나섰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했다. 매장 앞을 서성이던 손님에게 쇼핑을 왔냐고 묻자 "친구를 만나기로 해 기다리는 중"이라며 "오프라인 매장은 직원들이 밀착해 응대하는 게 부담스러워 방문이 꺼려진다"고 말했다.


인근에 위치한 LG생활건강의 화장품 편집숍 네이처컬렉션도 사정은 비슷했다. 매장에는 멤버십데이 행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찾는 손님없이 마스크를 쓴 직원 2명 만 매장 안을 지키고 있었다. 네이커컬렉션은 손님의 발길을 끌어들이기 위해 코로나19로 수요가 늘어난 일부 품목들을 대상으로 세일을 진행중이었다. 클렌징크림과 마스크시트 등 일부 품목에 한해 진행된 원플러스원(1+1) 행사는 강남 노른자 입지의 매장으로서는 전례 없는 할인 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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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데상트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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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인 양보라 씨는 "코로나19로 매장 손님이 많이 줄었다"며 "우리 매장에서 50%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맞은편에 있는 데상트 매장의 직원 전예랑씨는 "강남역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이 여전히 늘지 않고 있다"며 "신상 제품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매장을 찾는 손님은 여전히 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보다 저렴한' 가격을 내건 매장도 있었다. 같은 날 이마트 마포공덕점 내 비욘드 매장에서는 폼클렌징 제품을 온라인 최저가 보다 더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특가 이벤트를 벌이며 손님몰이에 나섰다. 직원 김수연 씨는 "코로나19 이후로 손님이 계속 줄면서 이벤트를 상시적으로 진행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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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의류매장에서 한 고객이 봄 옷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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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 강행한 백화점의 속사정…엇갈린 소비자 반응= 백화점 업계는 지난 3일부터 일제히 봄 정기세일에 돌입했다. 세일을 진행하기에 앞서 내부 고민은 깊었다. 불특정 다수를 모을 수 있는 세일을 단행한다는 외부의 비판과 백화점 방문 고객 중 확진자가 발생해 점포가 문을 닫게 되는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력사들의 재고 소진 문제로 더는 세일을 늦출 수 없었다는 게 업계 공통된 목소리다. 특히 모든 업체가 적자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실적 하락이 가파르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의 상품 대부분을 차지하는 의류의 경우 그 계절에 맞게끔 소비가 돼야한다"며 "계절을 놓치게 되면 헐값에 팔리거나 폐기처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물건이 팔리면 업체는 그 수익으로 다음 계절에 나올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공장을 돌리게 되는데 현재는 이 선순환 과정이 무너진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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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 본점 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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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반응은 엇갈린다. 직장인 성주영(31) 씨는 "당장 옷을 사지 않는다고 해서 생활을 못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세일을 한다고 해서 요즘 같은 시기에 굳이 백화점을 갈 생각은 없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 동참해야 하는 업체들이 먼저 나서 세일을 해야만 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의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매출은 전년도 봄 정기세일 대비 15.4% 하락했으며, 특히 여성패션이 매출이 같은 기간 34.6% 감소했다. 다만 긍정적인 반응도 있다. 주부 이선희(32) 씨는 "이제 시민들도 지칠 만큼 지친 것 같다"면서 "마스크를 끼고 조심하면 될 것 같아 이런 행사가 점차 많아지는 게 소비 진작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형마트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생필품이 주를 이루는 탓에 대형마트에서 이뤄지는 세일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다. 주부 김가현(43) 씨는 "코로나19 사태 초반에는 감염이 걱정돼 온라인으로 장을 많이 봤다"면서 "하지만 온라인으로만 장을 보는 데는 한계가 있고, 최근 소비 촉진을 위해 마트에서 세일도 많이 해 마트를 이전처럼 이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대형마트도 세일을 시행하는 데 있어 고민거리는 있다. 대형마트 업계 관계자는 "식재료 등과 관련한 세일은 비교적 적극 홍보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마트에 입점한 의류 업체 등 생필품을 제외한 곳은 매출 타격이 심각한데 이와 관련한 세일은 현재 코로나19 영향으로 기획 및 홍보에 많은 고민이 뒤따른다"고 설명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최신혜 기자 ssin@asiae.co.kr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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