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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백영옥의 말과 글] [144]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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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며칠 전 사온 사과가 짓무른 것을 봤다. 서로 맞닿아 있던 부분이 특히 심했다. 적당히 떨어뜨려 놓았으면 생기지 않을 일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이 한창인 때라 생각이 깊어졌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근접공간학(Proxemics)에서 인간관계의 공간을 4가지로 분류한다. 친밀한 공간, 개인적 공간, 사회적 공간, 공적인 공간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공간'은 '거리'로 읽어도 무방하다. 가령 친밀한 거리는 46㎝ 이내로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연인이나 가족 이외에 허락 없이 누군가 그 영역 안으로 들어오면 본능적 거부감이 드는 거리다. 개인적 거리는 46~120㎝ 이내로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로 평소 호감을 가진 지인들과의 관계다. 사회적 거리는 120~360㎝ 정도의 거리로 일적인 관계로 만나는 관계를 뜻하는데, 정부가 시행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 2m가 여기에 속한다. 공적인 거리는 강연이나 행사 등 360㎝ 이상의 거리로 이성적 영역이다.

문득 조금만 거리를 두었으면 더 좋았을 사람과 너무 거리를 두어 멀어졌던 사람들 모두가 떠올랐다. 어느 정도의 거리가 적당한 걸까. 거리 조절의 실패는 관계의 실패로 이어질 때가 많다. 동화 '고슴도치의 소원'에는 가까워지면 아프고 멀어지면 얼어 죽는 고슴도치의 딜레마를 이야기하며 이 문제를 "외롭지만 혼자이고 싶고, 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유채꽃이 한창인 제주에서 상춘객이 몰릴까 두려워 마을 사람들이 꽃밭을 갈아엎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바람이 많이 불던 제주의 돌담을 걸으며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거친 섬 바람에도 돌담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돌과 돌 사이의 틈새에 있다고 했다. 틈과 틈 사이, 그 빈 공간 때문에 바람이 빠져나가 돌담이 강한 바람에도 버틸 수 있었다고 말이다. 바이러스로 지구촌이 아비규환이다. 아직은 아름다운 사회적 거리가 필요한 시간이다. 2020년 봄날은 그렇게 간다.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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