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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아무튼, 주말] “백희나는 6전7기의 쾌거… 12명 심사위원 모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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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그렌상 심사위원장 보엘 웨스틴 인터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ALMA). 발음하기도 어려운 상 하나가 최근 국내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구름빵’ 작가 백희나(49)가 한국인 중 처음으로 이 상의 주인공이 됐기 때문이다. ALMA는 ‘아동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릴 만큼 이 분야 최고 상 중의 하나. 상금만 500만 스웨덴크로나(약 6억825만원)다. 아동문학상 상금으로는 최고액이며, 문학상 전체로 따져도 노벨문학상 바로 아래다. 스웨덴 정부는 2002년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에밀은 사고뭉치’ 등으로 세계 아동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을 기리기 위해 이 상을 제정했다.

조선일보

보엘 웨스틴(①) 스톡홀름 대학교 문학교수는 2014년부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달 31일 백희나(②) 작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수상 소식을 전했다. 웨스틴 위원장은 “백 작가의 작품 중 지난해 출간된 ‘나는 개다(③)’가 가장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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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세계 최대 규모 아동문학 박람회인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에서 ALMA 수상자를 발표하지만,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장소를 옮겼다. 스웨덴 스톡홀름 린드그렌 생가다. 린드그렌의 증손자가 사회를 보고, 보엘 웨스틴(69) 심사위원장이 수상자를 호명했다. 웨스틴 위원장이 백 작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선정을 통보하는 모습이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스톡홀름대학교 문학교수인 웨스틴 위원장은 2014년부터 ALMA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ALMA 심사위원회는 이번 심사평에서 "백희나의 작품은 마법과 경이로움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라고 했다. 그들이 본 마법과 경이는 무엇이었을까. 지난 7일 화상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웨스틴 심사위원장을 인터뷰했다.

우리 모두 백희나 작품에 빠져들었다

ALMA 첫 회 수상자는 '오이 대왕' 등을 쓴 오스트리아의 동화 작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와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쓴 미국 그림책 작가 모리스 센닥. 지난해에는 벨기에의 대표 그림책 작가 바르트 무야르트가 이 상을 받았다.

―ALMA는 어떤 상인가.

"2002년 스웨덴 정부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추모하고, 아동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만든 상이다. 이를 통해 많은 이야기가 공유되고, 다양한 번역 작품들이 나오면서 아이들이 더 수준 높은 문학을 접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심사는 어떻게 이뤄지나.

"1월부터 5월 15일까지 후보자를 추천받는다. 지금도 2021년 상을 위한 새로운 후보를 추천받고 있다. 우리의 승인을 받은 각 나라의 지정된 기관에서 후보자를 추천한다. 한국의 경우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의 한국위원회(KBBY) 등 네 곳의 기관에서 추천한다. 추천이 끝나면 심사위원들이 작품을 읽고, 분류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후 10월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후보자 명단을 발표한다. 이후엔 읽고, 조사하고, 토론하는 일의 반복이다. 3월 말, 최종 수상자를 선정하고 보통 5월에 시상식을 한다. 스웨덴 왕세녀가 시상자로 나온다."

한번 ALMA 후보자로 선정된 사람은 다음 해 기관에서 새로 추천하지 않더라도, 심사위원회 결정에 따라 다시 후보자 명단에 오를 수 있다. 올해는 67국 240명이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그중 새로운 후보자는 49명이었다. 백 작가는 2014년 처음 후보자가 됐고, 2020년까지 매년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ALMA 규정은 '예술성이 뛰어나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소중히 여겼던 인간적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돼 있다. 린드그렌은 아동문학이 유머와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첨예한 사회문제까지 다룰 수 있는 힘을 가진다고 봤다. 문학은 사람 사이의 이해와 교류를 증진시킨다. 또 작품에 아이의 시각을 담아야 한다. 백희나의 작품에는 항상 아이의 시선이 담겨 있다. 특정 지역에 줘야 한다는 식의 안배는 없다. 국적이 아닌 작품의 예술적 수준에 집중한다. 수상자는 삽화가일 수도 있고 작가나 독서 운동가(reading promoter·아이들이 더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사람)가 될 수도 있다. 아주 뛰어난 후보가 여럿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매년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편이다."

―심사위원은 어떻게 구성되나.

"위원장인 나를 포함해 총 12명의 심사위원이 있다. 지금은 대학교수 4명, 사서 3명, 작가와 삽화가 3명, 번역가 겸 학자 1명, 린드그렌의 가족(증손자) 1명이 있다. 작가면서 사서이거나, 비평가이면서 연구원이기도 하는 등 보통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최종 수상자로 백희나를 선정하는 데 12명 만장일치였나.

"이 부분은 규정상 더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심사위원) 모두가 백희나의 작품에 빠져들었다는 점이다."

―ALMA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아동문학상이자, 상금이 많은 문학상이다. 이를 모두 세금으로 충당한다. 스웨덴 국민의 불만은 없나.

"노벨문학상 다음으로 상금이 많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는 스웨덴이 아동과 아동문학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세계 곳곳에 알리는 중요한 신호가 된다. 문화에 대한 아동의 권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상금을 세금으로 내는 것에 대해 국민 사이에서 어떤 불만도 나온 적이 없다."

백희나 2014년 처음 후보에 올라

2004년 출간된 백희나 작가의 첫 작품 '구름빵'은 구름으로 만든 빵을 먹으면 몸이 두둥실 떠오른다는 상상에서 시작된다. 고양이 남매는 구름빵을 만들어 아침을 거르고 출근하는 만원 버스 속 아빠에게 이를 가져다준다. 천과 종이 소재 인형으로 제작한 캐릭터들을 실제로 촬영해 책에 싣는 방식으로 입체감을 더했다. 지난해 발간된 '나는 개다'의 경우 자세와 표정이 각각 조금씩 다른 찰흙 개를 50마리 이상 만들었다.

―심사평에서 백 작가의 책이 '마법과 경이로움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라고 했다.

"백희나의 이야기는 마법에 걸린 듯한 꿈같은 현실이 핵심 요소인 경우가 많다. 재밌고, 놀랍고, 감동적이며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캐릭터들의 삶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그녀의 책을 펼치면 그 세상으로 들어와 새로운 방식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해 보라는 초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녀의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 직접 경험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시각적으로도 정교하게 구성돼 (미술 작품처럼) 여러 번 읽고 가까이 감상하게 한다."

―백 작가의 작품을 처음 알게 된 건 언제인가.

"2014년 처음 후보작으로 올라왔을 때 보게 됐다. 첫 느낌이 좋았다. 다른 작품도 더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스웨덴에도 '구름빵'이 번역돼 들어왔는데, 더 많은 작품이 스웨덴에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인가?

"지난해 발간된 '나는 개다'를 가장 좋아한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개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엄마 개에 대한 그리움, 아이와의 우정, 새롭게 만난 인간 가족에 대한 책임감…. 특히 그림 속 개의 다채로운 표정과 몸짓, 자세를 통해 그리움·슬픔·기쁨 등의 감정이 읽는 이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백 작가는 출간 초기 출판사와 저작권 양도 계약을 맺어 계약금 850만원과 일부 인센티브를 받는 데 그쳤다. 데뷔작인 '구름빵' 등을 출간한 출판사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 중이다. 지난 1월 2심에서는 패소했다.

―백 작가의 소송에 대해 알고 있나?

"알고 있다. 그녀의 일이 잘 풀리기를 바란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TV나 컴퓨터 게임,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가 있다. 이런 시대에도 여전히 아동문학이 중요한가.

“책과 영상 매체는 상충하지 않는다. 미디어 속 이야기는 책이나 옛날이야기, 이솝우화나 신화에서 가져온 경우가 많다. 책을 읽으면 이런 이야기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미디어와 책 둘 사이를 오고 가며 ‘비교 독서’ 혹은 ‘비교 시청’하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백희나의 작품이 훌륭한 본보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림책의 이야기와 구성이 모두 살아 움직이도록 책에 생기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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