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우의 첫 주인은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였다. 1560년 이 지역에 발을 들여 놓은 버마 퉁구 왕조는 18세기 초까지 지배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인도 메이테이족이 카바우에 눈독을 들이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19세기 들어 퉁구 왕조를 계승한 알라웅파야 왕조가 인근 마니푸르로 세력을 확장하고, 인도를 식민지로 만든 영국이 뛰어들면서 충돌은 본격화했다. 1824년 영국은 버마에 선전포고를 하고 수도 양곤을 장악했다. 2년에 걸친 전투가 영국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버마는 카바우를 포함한 마니푸르 일대의 권리를 포기하는 ‘얀다보 조약’을 맺게 된다.
일단락된 듯 했던 영토 분쟁은 4년 후 반전을 맞는다. 영국이 돌연 카바우 계곡에 대한 권리 주장을 철회한 것. 영국은 이곳을 버마 땅으로 인정하되, 대신 마니푸르 왕조에 매달 500루피의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100년 넘게 지속되던 평화는 1952년 인도 정부가 마니푸르를 합병하면서 다시 깨졌다. 당초 자와할랄 네루 인도 초대 총리는 ‘화해’ 징표로 배상금 지불을 중지하고 버마 정부에 카바우를 완전히 양도했다. 하지만 이듬해 마니푸르 최고지도자를 자처하는 히잠 이라봇은 버마 정부와 카바우를 재양도하는 내용의 협정에 서명했다. 1년 만에 통치자가 또 뒤바뀐 것이다.
문제는 이런 내용을 구체화한 문서 등 기록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후 불안한 동거가 이어졌다. 1967년 3월 미얀마ㆍ인도 간 국경선 재지정 당시에도 양국은 카바우 38.6㎞ 길이의 공간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누구의 소유권도 정하지 않고 내버려뒀다. 자연스레 원래 땅을 점유했던 미얀마가 지금까지 카바우의 주인 행세를 해왔다.
양측의 다툼은 최근 재점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집권 인도국민당(BJP)의 라즈쿠마르 란잔 마니푸르주의원이 지난달 이 문제를 연방정부에 공식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란잔 의원은 “보상 없는 양도는 부당한 거래”라며 “1953년 합의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얀마 측은 인도 일각의 주장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무시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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