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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텅빈 공항에 면세점까지 사라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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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높은 건물주' 인천공항, '임차인' 면세점 요구 수용할까

롯데와 신라면세점, 1터미널 신규 면세 사업권 포기

선심쓰듯 인천공항이 내놓은 임대료 감면, 사실상 조삼모사 대책

아시아경제

8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이 한산하다.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우리 국민의 입국을 금지하고 있는 나라에 대해 사증면제와 무사증입국을 잠정 정지하고, 불요불급한 목적의 외국인 입국제한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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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혜선 기자] '콧대 높은 건물주' 인천국제공항이 "임대료 산정방식을 변경해달라"는 '임차인' 면세점의 요구를 수용할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세계 면세업체 2, 3위인 롯데와 신라면세점이 인천공항 1터미널 신규 면세 사업권을 포기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번에는 면세점도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며 일전불사(一戰不辭)의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11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인천공항이 롯데, 신라면세점의 면세 사업권 포기로 원점으로 돌아간 1터미널 신규 면세점 입찰건을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 인천공항은 현대백화점면세점이 가져간 패션ㆍ기타(DF7) 사업권을 제외한 향수ㆍ화장품(DF2), 주류ㆍ담배(DF3), 주류ㆍ담배(DF4), 패션ㆍ기타(DF6) 등 4개 구역의 사업자를 다시 선정해야 한다. 후순위 입찰자에게 기회를 넘길지, 사업권을 포기한 모든 구역을 놓고 다시 재입찰을 할지 여부를 놓고 고민중이다. 면세업계는 인천공항의 현 임대료 산정방식으로는 재입찰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면세점은 그간 수차례 임대료 산정 방식을 최소 보장금에서 매출 기준 영업요율로 바꿔 달라고 요청해왔다. 낙찰금액(최소보장금)을 임대료로 내는 방식이 실적 악화시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천공항은 면세점 요구를 매번 거절했다. 인천공항의 면세점 임대료는 여객 증감률에 연동해 조정한다. 첫해 임대료는 최소보장금을 내고, 운영 2년차부터는 직전년도 여객증감률의 50%를 증감한 금액이 적용된다. 최대 증감 한도는 전년도 임대료의 ±9%다. 매 반기 판매품목별 매출액에 영업요율을 곱해 산출한 금액이 최소보장금액보다 많으면 그 차액도 내야 한다.


면세점이 폭발한 배경에는 인천공항이 선심 쓰듯 내놓은 임대료 감면 혜택이 있다. 인천공항은 3~8월까지 임대료를 20% 감면해준다고 면세점에 통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여객이 90% 이상 감소하면서 면세점도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출국객수는 지난해 하루평균 10만명에서 올 4월 1000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인천공항면세점의 4월 매출은 지난해 대비 98% 감소했다. 현재 면세업체는 월 적자가 1000억원을 넘어서면서 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면세점들은 임대료 20% 감면이 사업 영위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마저도 사라질까 전전긍긍하며 수용했다.


문제는 인천공항의 단서 조항이었다. 인천공항은 감면해주는 대신 계약 회차년도 초기 6개월간의 감면 혜택을 포기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면세점들은 올해 국제선 여객이 감소하면서 내년 임대료를 9%까지 감면받을 수 있었다. 이마저도 인천공항이 없앤 것이다. 인천공항에 전달한 상업시설 임대료 감면 남부유예 신청을 보면 내년 8월부터 최소보장액이 변경되는 면세점의 경우, 초기 6개월간(2021년 8월~2022년 1월) 전년 임대료를 그대로 지불해야 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300억원의 임대료를 냈다면 내년에도 같이 적용한다는 의미다. 사실상 임대료 감면 납부유예 신청서는 내년도 임대료 할인 포기각서인 셈이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인천공항 면세점 매출이 사실상 0원인 상황에서 생색내기나 조삼모사 대책보다 특단의 상생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지금은 세계 1위의 면세산업을 지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공항공사와 마찬가지로 인천공항도 매출에 연동해 임대료를 산정해야 하는게 맞다"고 주장했다. 지방국제공항을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는 기본임대료는 면제해주고 운영기간 월단위 매출 증감 추이를 반영한 매출 연동 임대료를 산정해 받고 있다. 매출이 0원일 경우 임대료도 0원이다.


업계는 지나친 임대료가 공항 면세점들의 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근로자의 일자리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7년 영업 종료한 제주공항 한화면세점이다. 공항에서 근무하는 170여명의 한화갤러리아 직원들은 밖으로 내몰렸다. 이미 지난 2015년 신세계 김해공한 면세점 특허반납, SK와 롯데 면세점의 특허 상실로 근로자 대규모 실직 사태를 경험했다. 인천공항 면세점은 고용불안의 여파가 더 크다.


인천공항 입장에서는 임대료 인하가 쉽지만은 않다. 지난해 인천공항공사의 전체 수익 중 65%가 임대 수입이다. 이 중 대기업이 낸 임대료 비중이 91%에 달한다. 인천공항공사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어 고정비 부담이 큰 상황이라 임대료를 포기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생사기로에 선 면세점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선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인천공항이 리스크를 면세점에게 전가하는 건 맞지 않다"면서 "인천공항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정임대료를 부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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