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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한국형 전투기는 태평양을 건널 수 있을까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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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대 한반도 상공을 수호하면서 국내 항공우주산업 진흥의 첨병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발비만 8조원이 넘는 초대형 사업인 KF-X는 개발이 완료되면 우리나라가 120대, 인도네시아가 50대를 생산해 운용할 예정이다. 양산비용까지 합치면 약 20조원에 달한다. 개발을 맡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시제 1호기를 내년 상반기에 출고하고, 2022년 상반기에 초도 비행시험을 시작, 2026년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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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프레스 데이 행사에서 공군의 한국형전투기(KF-X)의 실물모형이 공개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시제 1호기를 내놓기로 한 일정이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KF-X를 둘러싼 의문과 우려는 여전하다. 개발에 참여하는 인도네시아의 이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개발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등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인도네시아, KF-X 이탈하나

복수의 군 소식통에 따르면,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6일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관계자들로부터 KF-X 관련 현안을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서는 인도네시아 분담금 미납 문제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장관이 KF-X 관련 사안을 전반적으로 다 챙기고 있다”고 전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같은날(6일) 공군과 한국항공우주산업 관계자들이 상경했다가 당일 밤에 돌아갔다”고 말했다.

8조5000억원으로 추산되는 KF-X 개발비는 정부 60%, 인도네시아 20%, 한국항공우주산업 20% 비율로 각각 분담하는 구조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는 1조7000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인도네시아가 지난해까지 납부한 금액은 2200여억원 수준이다. KF-X 개발이 진척되면서 소요비용은 계속 늘어나는데, 현금 대신 현물 납부를 희망하는 인도네시아의 분담금은 제때 납부되지 않는 상황이다. 군 소식통은 “(분담금 문제와 관련해) 인도네시아에서 전갈이 오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인도네시아가 KF-X에서 발을 빼려 한다는 시각이 내부적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같은 관측은 인도네시아 내부 사정과 관련이 있다. 지난 1월 프랑스 매체들은 인도네시아가 닷소사의 라팔 전투기 도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록히드마틴 F-16V 전투기 구매를 추진하고 있고, 미국의 제재로 실현이 어려워졌지만 러시아제 Su-35 전투기 11대 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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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Su-57 스텔스 전투기가 시험비행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이같은 상황에서 조코 위도도 정권의 내부 정세가 복잡하게 전개되면서 “거액을 들여 한국과 KF-X를 함께 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이 현지에서 퍼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CN-235 수송기처럼 항공기 완제품 제작에 주력하던 인도네시아가 부품 생산이나 항공정비사업(MRO)으로 정책전환을 꾀할 조짐도 엿보인다.

인도네시아가 KF-X 개발에 소극적이면, 부족한 사업비를 충당할 ‘플랜B’가 필요해진다. 현재 거론되는 계획으로는 방위사업청과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인도네시아가 미납한 분담금을 일정 비율로 나눠서 부담하는 방안이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방위사업청이 관리하는 사안이므로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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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 앞에 T-50 고등훈련기가 전시되어 있다. KAI 제공


하지만 정부도, 한국항공우주산업도 추가 비용 부담은 어렵다.

코로나19 사태로 정부는 초대형 추경예산과 재정투입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세입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추경예산을 마련하려면 기존 예산을 전용하거나 대규모 사업을 연기·중지해야 한다. 50조원에 달하는 올해 국방비 중 불용액이나 이월금액을 중심으로 상당한 액수가 추경으로 전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방산업계에서는 이달 초 열릴 예정이던 방위사업추진위원회가 연기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해석한다. 해군이나 공군의 굵직한 무기도입 사업이 연기 또는 재검토될 것이라는 추측도 많다. 이같은 상황에서 수천억원을 추가 부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인도네시아의 이탈로 KF-X 대당 생산비가 늘어나는 것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한국항공우주산업도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항공우주산업 매출액은 3조1102억원, 당기순이익은 1983억원이다. 수천억원의 개발비를 추가 부담할 재정적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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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4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프레스 데이에 다양한 종류의 항공장비 및 지상장비들이 전시돼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실전에 즉각 투입할 전투기가 필요하다

재정적 문제 외에 KF-X의 성능과 미래 전투력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견해가 나오고 있다. “실전에서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에 띄우는 것은 재정적 여건이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그 비행기를 실전투입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4세대 전투기인 유럽의 라팔과 타이푼은 개발이 완료됐을 당시에는 공대공 전투기능만 갖춘 상태였다. 이후 10여년에 걸쳐 점진적인 개량을 통해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공대지 정밀유도무기 등을 추가하면서 실전투입이 가능한 전천후 전투기로 바뀌었다. 중국의 J-10도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 진화적 개발 방식이라 불리는 이 개념은 KF-X에도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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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과학연구소(ADD)가 만든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시제품이 성능 시험을 받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10여년에 걸쳐 KF-X 성능을 끌어올릴 여유는 없다는 우려가 많다. 공군 F-4, F-5 전투기는 노후화가 심해 전력공백 우려가 크다. KF-X가 완전한 전투능력을 갖췄다고 인정 받을 시기는 2030년대 초·중반으로 예상된다. F-35A보다 발전된 6세대 전투기가 중국, 일본에서 모습을 드러낼 시점이다. 2026년부터 약 5∼10년 동안 제한된 성능을 지닌 4.5세대 KF-X가 5, 6세대 전투기를 지닌 주변국 공군과의 대결에서 위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수출 경쟁력 확보도 어렵다”는 주장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2002년 한국 공군 차세대전투기(F-X) 사업 당시 라팔측은 공대공 및 제한된 공대지 능력을 갖춘 8대를 2005년에 먼저 인도하고 나머지 32대는 2008~2009년 인도하겠다고 제안했다. 타이푼은 공대공 및 제한된 공대지 능력을 갖춘 기체를 일단 인도하고 2009년 한국 공군 요구에 맞게 개량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진화적 개발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에 한국 공군의 요구를 신속하게 100% 충족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반면 F-15K는 공군 요구조건과 항공기 인도일정 등을 빠르게 충족, F-X 사업의 최종 승자가 됐다.

F-X 사업의 전례로 볼 때, 2026년에 나올 제한된 성능의 KF-X 초기형이 공군과 해외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가 F-16V, Su-35, 라팔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도입하자마자 실전투입이 가능한 성능을 갖고 있고, 검증이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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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공군 도색을 한 F-16V 전투기. 록히드마틴 제공


남은 방법은 KF-X 첫 생산분부터 성능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국제 항공무장 탑재가 미국 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어려워졌지만, 미티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과 IRIS-T 단거리 공대공미사일, MK82 폭탄, 한국형유도폭탄(KGGB)과 합동정밀직격탄(JDAM) 외에도 공군이 운용중인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나 이스라엘제 스파이스 정밀유도폭탄처럼 실전에 즉각 쓸 수 있는 무장이나 전자장비라면 지금이라도 추가 장착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기 생산 기체부터 전투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공군 전력공백을 메우면서 주변국 견제도 가능하고 해외 수주 가능성도 높아진다.

KF-X는 항공우주산업 후발주자인 우리나라의 입지를 높일 수 있는 기회다. 전투기를 자체 개발한다는 것은 그만큼 기술 수준이 올라섰다는 의미다. 하지만 산업적 의미와 함께 군사적 효용성도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라팔이나 타이푼처럼 공대공 능력을 먼저 갖춘 뒤 점진적으로 성능개량을 하는 방식은 20~30년전의 옛날 이야기다. 지금 개발 방식대로 KF-X를 만들면 2030년 일본 F-35A와 중국 J-20, FC-31, 러시아 Su-57 스텔스 전투기에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KF-X가 맞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정부와 군의 정책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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