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0 (금)

여야, 부동산 총선 공약 “대놓고 역주행”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코로나19의 기세에 총선이 눌렸다. 각 당의 총선 공약 발표는 예전에 비해 1~2주 느렸고, 내용 역시 대체로 지난 총선과 대선 공약을 다시 나열하는 수준이었다. 구체성이 떨어지는데다 지난 총선의 주요 화두였던 ‘경제민주화’와 같이 눈길을 잡는 이슈도 없다. 국민의당은 선관위에 제출한 10대 공약 외엔 정책 공약집을 내지도 않았다.

총선시민네트워크에서 재벌개혁·경제민주화 분야 공약 평가에 참여한 경실련의 권오인 경제정책국장은 “과거엔 세부 공약집이 좀 더 빨리 나왔고, 지금처럼 정책 경쟁이 완전히 실종되진 않았다”며 “공약의 구체성도 떨어져 평가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의원(왼쪽 두 번째)이 3월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부동산 대책 합동 기자회견에서 종부세 감면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민주당 개혁 후퇴, 통합당은 역행

이낙연 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종부세 완화, 대출규제 완화를 시사하는 등 여당이 부동산 개혁에서 멀어지는 사이 미래통합당은 분양가 상한제 폐지, 공시가격 인상 저지를 내걸며 대놓고 역주행하고 있다. 경제정책에서도 여당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이슈에서 지난 공약을 재탕하는 수준이고, 미래통합당 공약에선 아예 관련 정책을 찾기 어렵다.

부동산 정책 검증에 참여한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세금으로 거대 양당에 굉장히 많은 보조금을 주는데 정책을 보면 여의도연구원(통합당)이나 민주연구원(민주당)이 왜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고민이 보이지 않고, 성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당은 중요한 이슈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고, 미래통합당은 옛날 정책을 복사해 붙여놓기 수준 내지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무조건 반대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4월 9일 재벌개혁·경제민주화·민생경제 분야 등 각 당의 공약 평가를 발표하며, 한 줄 평을 남겼다. 민주당은 “전반적으로 후퇴”, 통합당은 “후퇴를 넘어 역행”이었다. 여야 1·2당의 부동산 공약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부동산 분야에선 여당의 보수 회귀가 눈에 띈다”고 말했다.

보수 회귀의 상징적인 모습은 종부세 완화 움직임이다. 이낙연 위원장은 4월 2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1가구 1주택 실수요자가 다른 소득도 없는 경우에는 현실을 감안한 고려가 필요하다”며 종부세 완화 필요성을 밝혔다. 그는 같은 달 5일 서울 종로 유세 도중 기자들과 만나서도 “(종부세 완화를) 당 지도부와 협의했다. 그렇게 조정이 됐다”고 말해 정부·여당의 종부세 정책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앞서 송파을에 출마한 최재성 의원을 비롯해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경기 분당 등 고가 주택 밀집지역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 10명은 지난 3월 27일 1주택자 종부세 감면과 장기 실거주자 종부세 완전 면제 등을 공동 공약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통합당은 이미 종부세 인상 반대를 천명하고 종부세 부과 기준이 되는 1주택자 과세표준 공제 금액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지난해 종부세 대상자는 고지 기준으로 59만5000명이다. 종부세는 매년 6월 1일 기준 개인별로 소유한 주택 또는 토지의 공시가격 합계액이 주택(아파트·다가구·단독 등)은 공시가 6억원(1가구 1주택자는 9억원), 종합합산 토지는 5억원, 상가·사무실 부속토지 등 별도합산 토지는 80억원을 초과한 사람에게 부과된다. 이때 1가구 1주택자의 경우 보유 기간과 나이에 따라 산출세액의 최대 70%까지 빼준다.

여야의 종부세 완화 움직임에 전문가들은 집값 안정을 해치고, 조세 정의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최은영 소장은 “마치 종부세와 관련해 1주택자 혜택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며 “1가구 1주택자는 고령자와 장기보유자에 대해 이미 70%까지 세액을 감면해주고 있고, 게다가 정부는 지난해 12월 16일 이를 8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업·펀드의 부동산 정보 공개도 유보

부동산 가격 상승에 비해 세금은 각종 공제를 반영하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마아파트를 예로 들면 이 아파트의 전용면적 84㎡ 시세는 2019년 1월 평균 17억2250만원에서 2020년 3월 평균 22억원으로 5억원 가까이 뛰었다. 이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같은 기간 11억5200만원에서 15억9000만원이 됐다. 지난해 60세인 1주택자가 10년 이상 이 아파트를 보유했을 때 내는 종부세는 33만4152원이었다. 올해 공정시장가액비율이 85%에서 90%로 오르고, 지난해 12·16 대책에 따른 종부세 인상률을 적용하면 올해 납부할 종부세는 142만1568원으로 예상된다. 1년 만에 종부세가 4배 이상 늘긴 하지만 그간 가격 상승폭을 감안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부동산 투기 근절을 강조했지만 국민은 믿지 않는다”며 “이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당·정·청 면담에서 선거를 앞두고 규제하지 말라고 하고, 분양가 상한제 시행도 유예하면서 여당이 집값을 안정화한다면서 실제로는 집값을 떠받치는 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1주택자는 투기꾼이 아니라 과하다고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세율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오른 집값을 낮추는 방식이어야 한다”며 “우리나라 보유세 실효세율이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인 0.15%인 상황에서 집값을 안정화하려는 노력 없이 민원 해결하듯 세금만 낮추면 논란은 계속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시민네트워크의 정책 평가에서 미래통합당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 정책, 뉴타운·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은영 소장은 “미래통합당 부동산 공약은 강남과 용산을 중심으로 한 서울 도심, 1기 신도시에 출마한 사람들의 공약 같다”면서 “총선은 전국 선거임에도 특정 계층이나 지역과 관련한 공약만 있다”고 말했다. 여당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강남권 유세 지원을 하면서 재건축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민주당은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요구권과 인상률 상한제 도입 등을 공약했지만 20대 국회 활동을 볼 때, 실제 입법화에 나설지 미지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공공임대주택 정책과 공시가격 정상화, 보유세 강화 등 민감한 주제들은 공약에서 제외하고, 청년과 신혼부부, 노인, 장애인 등 특정 계층에 한정된 공약만 존재한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김성달 국장은 “신혼부부·청년의 주택문제도 집값을 낮추기보다 공급 중심으로 해결하려 하는데 공공택지를 민간에 팔아넘기는 정책으론 ‘로또 논란’만 낳는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1주택자 대출규제 완화 움직임이나 민생당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폐지 공약에 대해선 그나마 집값 폭등을 막던 안전장치를 푸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정의당이 공약으로 내건 기업과 펀드의 부동산 정보공개 요구에도 유보적 입장을 표했다. 종부세가 주택 중심으로 강화되고 있지만 종부세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토지에 대해선 무풍지대라고 할 정도로 규제가 약하다. 법인(기업)은 전체 토지 면적의 85% 정도를 차지하고 특히 상위 1% 법인이 전체 법인 소유 토지가액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시중에 풀린 자금이 부동산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부동산으로 돈을 벌게 만들어놨기 때문에 혁신이나 생산적 활동보다 부동산 사업으로 그럭저럭 버티면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면서 “기업 보유 토지 정보를 공개해 재벌 대기업의 부동산 투기가 사회적 감시를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상공·가맹점 협의요청권 담아

20대 국회가 이뤄낸 입법적 성과는 주로 적합업종특별법·가맹대리점법·상가임대차보호법 등 ‘공정경제와 중소상공인 분야’였다. 다만 20대 국회에서도 공정위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나 중소상공인단체의 협의요청권 등 보다 근본적인 법 개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과 정의당을 중심으로 이런 내용이 공약으로 제시됐지만 민주당은 현실적인 지원책에 중심을 둬 개혁성에서 다소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합당의 경우 다른 분야에 비해 이 분야에서 그나마 많은 공약을 제시했지만 대체로 구체성이 떨어지고 방향성만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정의당이 초과이익 공유제나 전속고발권 폐지 등에서 구조적인 개선점을 잘 담았다”면서 “국민의당은 20대 총선 때 대·중소기업 초과이익 공유제나 하도급 단가 연동제 등을 공약했는데 이번에는 전혀 없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대기업·가맹사업자의 갑질을 막고 상생을 도모하기 위한 중소상공인단체나 가맹점 단체의 협의요청권 보장 의무화를 공약했다. 김주호 팀장은 “가령 비슷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하도급 업체들이 협회를 구성해서 공동으로 하도급 단가를 조정할 때 현재는 공정거래법상 담합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면서 “공정위가 거래조건 개선을 위한 협의는 담합으로 보지 않도록 지침을 개정하기로 했지만 법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벌개혁을 강조해온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당이 상법 개정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재벌개혁이나 일감 몰아주기에선 재탕으로 보이는 정책이 많다”며 “특히 이사선임과 관련한 집중투표제, 지주회사가 자회사에서 브랜드 사용료나 경영 컨설팅으로 돈을 받는 것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다중대표소송제 외에 전자투표제·집중투표제 의무화나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기업 이사회 지배구조와 소수주주권 확보를 위한 공약이 강화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미 해당 공약들은 지난 국회에서 민주당·정의당·국민의당이 122명으로 공동발의한 후 지지부진 논의되다 법안심사소위도 통과하지 못하고 사장된 내용이다.

김 팀장은 “20대 국회에서 재벌개혁 법안은 거의 통과된 게 없고 중소상공인 관련 법이나 공정거래법상의 상가임대차·적합업종 특별법·가맹사업 대리점법 등은 여러 번 조각난 채 통과되기도 했다”면서 “개혁 공약을 내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평가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 유튜브 구독▶ 경향 페이스북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