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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지친 나라에서 온 편지] 중국-우한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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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76일 만에 중국 우한 봉쇄는 풀렸지만 빠져나간 이도, 남은 이도… 혐오와 해고 위기라는 또 다른 ‘봉쇄’에 맞닥뜨려

2019년 12월12일, 중국 우한시. 한 환자에게서 원인을 모르는 폐렴 증상이 나타났다. 코로나19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120일 만에 신종 전염병은 전세계를 뒤덮었다. 4월9일 기준 215개국에서 총 145만9590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8만6993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적을 가리지 않는 바이러스처럼, 한 국가가 겪는 고통과 공포의 깊이도 무작위적인 것처럼 보인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제도가 선진적이며 시민들도 민주적인 국가에서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아프고 죽는다.

재난의 시기, 그나마 공동체를 지탱하는 게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던 차에, 코로나19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이 <한겨레21>로 글을 보내왔다. 넉 달째 초긴장 상태로 사는 중국(확진자 8만1865명), 드러난 확진자 수는 적지만 그래서 더 불안한 일본(4768명), 믿기 힘든 속도로 확진자가 늘어나는 미국(42만4945명)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코로나19로 무척 지쳐 있었지만 차분하게 각국 상황을 전했다. 전염병보다,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더 크게 느낀다고 똑같이 말했다. _편집자

“우한 봉쇄 해제.”

4월8일 자정을 기해, 중국 우한이 76일간의 봉쇄에서 해제됐다. 중국 언론뿐만 아니라 전세계 언론들도 이날 우한 봉쇄 해제 관련 기사를 머리기사로 타전했다. 한국 보수 언론들도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우한’이 쏟아져 나온다” “우한 봉쇄 해제, 탈출 행렬 줄이어”라는 유사한 제목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마치 대규모 ‘바이러스 군단’이 무방비 상태로 풀려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기사들이다. 우한 봉쇄가 해제되면, 중국에서 조만간 제2의 확진자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이들이 다른 도시를 통해 혹여나 한국 등으로 ‘역유입’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유포하는’ 보도가 대부분이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다

보도에 따르면, 76일 만에 봉쇄가 해제된 이날, 각종 교통수단을 이용해 우한을 빠져나간 시민은 10만 명 가까이 된다. 이날 하루 동안 베이징으로 돌아온 인원만 1만1천 명 정도이며, 앞으로도 매일 1천 명에 가까운 ‘강제 억류 시민들’이 돌아올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 내 일부 언론이 보도하듯이 우한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원래 자신들 집과 직장으로 복귀하는 사람들이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도시에서는 해당 지역에 거주지와 직장, 뚜렷한 사유가 없는 사람은 진입을 허가하지 않는다. 또한 복귀하는 사람들도 이른바 ‘녹색코드’라는 건강코드를 발급받지 못하면 우한을 벗어날 수 없다. 이 때문에 ‘봉쇄 해제’ 뒤 우한을 떠난 시민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무증상 감염의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중국 정부의 통제 규모와 강도로 미루어볼 때, 우한 봉쇄 해제가 제2의 확진자 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치과의사 리샹도 76일 만에 봉쇄 해제된 우한을 떠나 베이징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1월 중순 춘절을 앞두고 고향 우한으로 내려갔다. 종합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는 아내는 근무날짜가 조정되지 않아 함께 내려가지 못했다. 아내는 근무를 마치고 춘절 전날 딸과 함께 고속열차를 타고 내려가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 후 80여 일 동안 ‘이산가족’이 됐다. 우한에서 강제 격리돼 80여 일간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고령의 부모님은 다행히도 무사히 이 ‘역병’을 피해갔다.

리샹의 고향 집은 코로나19 환자 집중치료 시설로 지정된 우한 최대 병원인 진인탄병원 부근이라, 집에서 격리당하는 동안 ‘무서워서’ 제대로 창문조차 열지 못했다. 혹여나 병원에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바람을 타고 그의 집 창문 사이로 스며들까 해서 말이다. 의사가 직업인 그도 이 무시무시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앞에서는 ‘비과학적인 상상들’이 매일 머릿속을 활개쳤다고 한다.

전세계의 ‘집단 바이러스’ 취급에 상처 입은 시민들

더군다나 우한에는 수많은 친척과 동창이 있고, 그들과 매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주고받는 정보는 대부분 절망스럽고 암담한 내용뿐이었다. 창문 밖으로, 매일 구급차들이 쉴 새 없이 병원을 오가는 모습과 장사진을 친 환자들을 볼 때마다 언제 자기도 저렇게 될지 몰라서 세상의 모든 신에게 기도하는 심정으로 살았다. 실제로 경찰로 근무하는 중학교 동창 한 명이 확진자가 됐는데, 나중에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그의 가족 두 명이 더 감염됐다.

베이징에 있는 아내와 매일 영상통화를 하면서 “당신이 싸울 때마다 헤어지자고 했지? 진짜 헤어져보니까 어때? 나랑 이혼하고 싶으면 지금이 적기야!”라는 ‘웃픈’ 농담도 주고받으며 무료한 시간을 달랬는데, 봉쇄가 장기화하자 이러다 진짜 영원히 ‘헤어질 수도 있겠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집 밖에 나갈 수 없는 상태가 한 달 이상 되면서 갖가지 잡생각과 슬픈 상념만 가득 차더라는 것이다.

자기는 그나마 우한이 고향이고 부모님 집도 있어서 거주 문제는 없었지만, 출장이나 기타 볼일 등으로 급하게 우한을 내려왔다가 갇혀버린 타지 사람들은 지난 두 달 지옥보다 더한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들 대부분은 갈 곳이 없어서 아파트나 건물의 지하 주차장, 기차역 등에서 생활했다. 그들을 방치한 정부를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리샹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지금 코로나19 방역에 가장 성공했다며 ‘중국식 방역 경험 모델’을 전세계에 자화자찬하듯이 홍보하고 있지만, 우한의 민심은 아주 싸늘하다. 지난 80여 일 동안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바이러스를 유포한 ‘원흉’이 되었고 자국민마저 우한 사람을 집단 바이러스 취급을 하기 때문에, 우한 사람들 마음에 새겨진 분노와 상처는 쉽사리 치유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국 내 감염 상황이 호전되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역유입 문제가 심각해지자, 타 지역 아파트 주민들 단체대화방 등에서는 “모든 외국인을 깡그리 우한으로 보내서 집단 격리를 시켜야 한다”거나 “격리 위반자들도 모두 다 우한으로 보내버려야 한다”는 등의 조롱성 말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일상화한 ‘농담처럼’ 매일 유포됐다.)

한겨레21

시진핑의 ‘방역전쟁’ 일지는 끝나가지만

그는 또, 심지어 타 지역에서는 우한이나 후베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각종 먹거리와 농산품마저 ‘바이러스가 묻었을까봐’ 자기네 지역으로 들여오는 걸 기피한다며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우한의 대표 음식 러간?x도 이제는 ‘바이러스 국수’로 조롱받는다고 한다. 타 지역에 있는 우한 러간?x 식당들은 아예 영업조차 불허되고, 허가된 곳도 아무도 먹으러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3월10일 시진핑 주석이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 우한을 방문했을 때 자기를 비롯한 많은 우한 사람은 시 주석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갇혀 있는 80여 일 동안 자기들은 사실상 버림받은 집단 바이러스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시 주석 방문 전, 쑨춘란 부총리가 사전 작업으로 우한의 한 아파트 단지를 시찰했을 때 갑자기 아파트 위 창문을 열고 주민들이 “가짜야, 다 가짜!”라고 외쳤는데, 당시 우한 사람 대다수는 그 외침에 아주 ‘격하게 공감’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누군가 뇌관만 살짝 건드려도 우한은 바로 폭발할 수 있는 화약고나 마찬가지다. 우한에서는 지금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사태에 대비해 철통같은 도시경비를 서고 있다. 우한 사람들의 싸늘한 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민일보>와 <신화사> 등 모든 관방매체에서는 연일 “시진핑 주석의 ‘방역전쟁’ 일지”를 연재 보도 중이다. 이들은 “시 주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한의 방역 상황을 친히 지휘했다”며 “시 주석은 항상 우한 시민들을 마음에 담고 애달파하셨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봉쇄 해제된 우한에서 베이징으로 다시 돌아온 리샹에게는 또 다른 ‘봉쇄’가 기다리고 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돌아오기 이틀 전에 자신이 근무하던 치과병원에서 사실상 해고 통지를 했다. 그는 예전에 제법 규모가 있는 종합병원에서 근무했는데 외부의 한 투자자 제안으로 사직서를 내고 민영 치과병원 책임의사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에서 병원도 무기한 영업 중단을 해야 했고 그로 인한 적자와 운영난을 견디지 못하던 투자자가 ‘더는 힘들다’며 병원 경영을 포기한다고 통보했다. 남은 것은 청산 절차뿐이라며.

실업인구가 최대 2억 명 될 거라는 비관적 전망

그래도 자기는 전문직이고 경력도 있는 의사라서 취직 걱정은 크게 안 하지만, 강제 해고를 줄줄이 당하는 보통 사람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취직하기 힘들 것이라며 “우한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중국 내 경제 전문가들의 각종 분석에 의하면, 1월과 2월 두 달 동안 중국에서는 약 24만7천 개 기업이 파산 신청을 했고, 3월과 4월 통계가 나오면 더 증가할 것으로 본다. 중국에서 경제가 가장 발전한 지역이자 한국 기업도 많이 들어가 있는 산둥성은 60% 정도의 중소기업들이 ‘버티기 힘들다’고 했고, 13.8% 정도만 6개월 이상 버틸 수 있을 거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중국 선전왕정자산관리공사의 류천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잡지 <차이신> 기고를 통해 “코로나19 영향으로 중국 실업인구는 1.5억~2억 명 되고 그중 3차산업 종사자의 실업인구만 1억1천만 명 정도에 달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전세계에 사상 유례없는 실업 대란이 일어나리라는 전망이 쏟아지는 가운데, 세계경제의 기관차를 자임하는 중국이 코로나19 방역전쟁에 이어 실업과의 전쟁은 어떻게 ‘성공적으로’ 치러나갈지 또 한 번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죽은 자는 안식을, 산 자들은 떨쳐 일어나 용감하게 전진하자!”

4월4일 청명절날. 당과 정부 주도로 ‘코로나19 기간에 희생된 의료진과 열사들에 대한 집체 애도식’이 거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전국 모든 사람이 일제히 3분 동안 묵념했고 <신화사> 등 관방매체는 공식 보도를 통해 “어머니 조국의 애간장이 끊어지고, 동포들의 눈물이 비처럼 흩뿌린 날”이라고 했다.

나흘 뒤인 4월8일, 우한이 봉쇄 해제됐다. 그리고 같은 날, 시 주석 주재로 열린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시 주석은 “업무 복귀와 경제생산 회복 정책을 실시하라”고 대내외에 공식적인 ‘하명’을 내렸다. 이와 함께, 중국 언론은 일제히 전국적으로 각 기업의 업무와 생산 복귀율이 이미 97%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우한 봉쇄 해제를 기점으로 중국은 사실상 코로나19 사태에서 벗어나 서서히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향해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아빠가 딸에게 정말 미안한 이유

80여 일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리샹도 조만간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대로 구직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리샹이 베이징에 돌아와서 아내와 다시 해후했을 때, 아내를 부둥켜안고 이런 ‘고백’을 했다. “예전에 당신이 딸을 낳았을 때 솔직히 병원 계단을 올라가는 내 발걸음이 휘청거려서 쓰러질 뻔했어. 마음속으로 아들을 간절히 바랐는데 딸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이번 생에는 아들을 못 낳겠다는 서운함이 컸거든. 근데 우한에 80여 일간 갇혀 지내면서 가장 무서웠던 건 다시는 당신과 딸아이를 못 볼지도 모른다는 거였지. 딸아이에게 그때는 아빠가 정말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었어….”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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