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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처음으로 국제유가가 0달러 이하로 폭락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5월 인도분 WTI(서부 텍사스 원유) 한 배럴 가격이 마이너스(-) 37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석유 한 배럴을 사면서 돈을 내는 대신 오히려 4만원 넘는 돈을 덤으로 받는다는 뜻이다.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석유 수요가 급감한 결과 미국 내륙의 원유 저장고가 가득 차면서 처치곤란이 된 석유를 돈 주고 땡처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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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기름을 사서 놔둘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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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WTI는 배럴당 마이너스 37.63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마이너스 40.32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전 거래일(17일) 종가인 배럴당 18.27달러 대비 하루만에 약 56달러나 폭락한 셈이다.
그러나 WTI 6월 인도분은 18% 떨어지는 데 그치며 20.43달러를 기록했다. 선물시장에서 근월물(5월물)보다 원월물(6월물) 가격이 더 높아지는 '콘탱고'가 발생한 셈이다.
이날 5월 인도분 WTI 가격의 비정상적인 폭락은 원유 저장 공간이 가득 찬 가운데 선물 계약 만기일이 다가오면서 빚어진 특수한 현상이다.
원유 등 상품에 대한 선물 계약의 경우 만기가 지나면 실물을 인수해야 한다. 5월 인도분 WTI의 경우 만기일이 21일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로 전국에 이동제한령이 내려지면서 미국의 휘발유 및 항공유 수요가 급전직하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원유 생산은 계속 이뤄지면서 WTI가 생산되는 서부 내륙지역의 원유 저장창고가 사실상 포화 상태가 됐다.
미국 EIA(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의 원유 재고량은 전주 대비 1925만배럴 늘었다. 당초 시장 전문가들이 예상한 1100만배럴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다.
결국 당분간 원유 실물을 받아도 저장할 장소가 없다고 판단한 WTI 선물 구매자들이 5월 인도분을 팔고 6월 인도분으로 갈아타는 '롤오버'에 대거 나서면서 5월 인도분 가격의 마이너스 폭락 사태가 빚어졌다는 분석이다.
미국 경제방송 CNBC의 간판 앵커인 투자전문가 짐 크레이머는 "말 그대로 더 이상 기름을 사서 놔둘 곳이 없다"고 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아라비아 왕세자/ AFP=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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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를 가득 실은 수많은 유조선들이 바다 위에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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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I에서 이 같은 마이너스 폭락 현상이 나타난 것은 해상이 아닌 내륙 유전에서 나오는 유종의 특성 탓이기도 하다. 해상 유종의 경우 저장 창고에 빈 자리가 곳이 없을 경우 유조선에 기름을 실은 채 바다에 띄워둘 수 있다.
최근 북해산 브렌트유의 가격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다. 국제유가의 기준물인 6월물 북해산 브렌트유는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이날 저녁 8시35분 현재 배럴당 2.23달러(7.9%) 내린 25.85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RBC캐피탈의 헬리마 크로프트 글로벌원자재전략본부장은 "현재 바다 위에는 원유를 가득 싣고 정유소로 가던 중 그들이 원유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그냥 떠 있는 수많은 유조선들이 있다"고 말했다.
주요 산유국들의 미흡한 감산 합의도 유가 폭락에 한몫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OPEC(석유수출국기구)과 러시아 등 10개 비OPEC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는 지난 12일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5월부터 6월까지 두 달 간 하루 970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전세계적 석유 수요 감소량 추정치인 하루 약 2000만 배럴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웨스트팩의 로버트 레니 전략가는 "WTI 5월 인도분 가격의 폭락은 선물 계약 만료가 주된 원인"이라며 "앞으로 변수는 6월 인도분 WTI까지 배럴당 20달러 이하로 내려갈지 여부"라고 했다.
뉴욕=이상배 특파원 ppark14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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