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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4 (금)

이슈 전두환과 노태우

[한겨레 프리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없다 / 오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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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가 지난해 3월1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인정신문을 마친 뒤 법정을 나가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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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이 실리는 27일 오후 2시, 광주지법 법정동 201호에서 피고인 전두환씨의 사자명예훼손사건 형사재판이 열린다. 새로 구성된 재판부가 피고인에 대한 인정심문을 하기로 해 전두환씨의 출석이 예정돼 있다. 전씨는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2018년 5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5·18유족회는 광주지법 일대에서 희생자를 기리는 소복과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침묵시위를 벌일 참이다. 부끄러움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온 전씨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 궁금해하다 이내 덧없는 기대를 접는다. 이날 재판에는 이순자씨도 출석 신청을 했다고 하니 백년해로하는 ‘이심전심’(이순자 마음은 전두환 마음)을 볼 수 있을 듯도 하다.

광주가 피로 물든 지 올해로 40년을 맞는다. “그날 저들이 받았던 훈장을 회수할 때까지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말라”던 한 음유시인의 노래처럼, 반세기가 돼가는 지금까지 우린 아직 붉은 꽃을 심을 수가 없다. 그 무심한 세월 동안 한국 사회는 최초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나 진상규명의 미진함과 별개로 우리는 광주학살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 안다. 이번 4·15 총선 결과는 그 학살자를 비호하던 세력의 정치적 임종이 임박했음을 일깨운 사건이다.

물론 ‘북한군 개입’ 운운하는 미래통합당과 조선일보 따위의 능멸도 엄연하다. ‘일베’로 상징되는 ‘작은 전두환들’의 망언도 참담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전두환과 그의 치세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단면적 이해는 5·18 40년을 앞둔 오늘을 더욱 뒤숭숭하게 만든다.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그의 이름에서 학살자를 연상하기보다,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챙긴 파렴치범의 그림자를 보고 있다. ‘12·12 군사반란’ 등의 내란 혐의와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1997년 전씨가 무기징역을 확정받았을 때, 대중의 비난이 주로 향했던 곳은 광주시민들의 피로 물든 그의 손이 아닌, 도둑정치로 채운 그의 금고였던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누구의 말처럼 언제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건 사악한 사람들의 의도적인 몰이해가 아니라 선량한 사람들의 낮은 인식이다.

학살자의 책임을 묻는 일이 중단돼선 안 되는 까닭이다. 5월 가족들의 지난한 진상규명운동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5·18을 폭동으로 배우고 가르쳤을 것이다. 그 시대의 전면에서 전두환과 그의 무리들은 더 자주, 더 방자한 거드름을 피우고 살았을 터다. 5·18 40주기를 맞아 <한겨레>가 지난 2월부터 연재하는 ‘오월, 그날 그 사람들’은, 빨갱이로 내몰린 치욕의 세월에도 인간의 존엄과 고귀함을 잃지 않던 이들을 통해 한국 사회가 5·18에 진 빚을 환기해주고 있다. 그날의 고통을 천형처럼 지고 사는 이들의 끝내 버릴 수 없는 희망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여기까지라도 올 수 있었다.

한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5·18이 국가기념일이 되고, 대통령과 유력 정치인들이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고 해서 오월 광주가 정치적으로 온전히 복권됐다고 할 수는 없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천만명이 관람하고, 5·18을 다룬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마 시티’(Ma City)를 전세계의 ‘아미’들이 따라 부른다고 해서 오월 광주가 문화적으로 복권됐다고 할 수는 없다. 오월 광주의 진정한 복권은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이 80년의 학살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그 기억을 당연한 상식으로 여길 때 가능할 것이다. 야만의 80년대로 언제라도 회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눈 밝은 젊은 세대들이 늘어날 때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그 시작은 전두환씨를 전 대통령이 아닌 학살자로 호명하는 일이 돼야 한다. 사면과 무관하게 그는 반인도적 범죄자다. 5·18 40주년을 맞아 전씨를 학살자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없다.

한겨레

오승훈 ㅣ 전국팀장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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