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빨래' 숙제 내준 초등 교사 사건 파장
"교육청 대응 미흡, 성인지 감수성 부족" 비판 잇따라
전문가 "교육 당국 제대로된 성 의식 필요"
울산시교육청 청사 전경/사진=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강주희 인턴기자]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속옷빨래 숙제를 내주고, 성(性)적 표현을 하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한 사건이 알려지며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해당 사건이 당초 교육청에 한 차례 신고된 바 있지만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아 2차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문가는 학교 내 성 착취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교육 당국의 제대로 된 성 의식과 신중한 대응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사건은 27일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 정상인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게시글의 작성자 A 씨는 지난달 해당 내용을 토대로 교육지원청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올렸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게시글에 따르면, 당시 신고를 넘겨받은 울산 강북교육지원청은 A 씨에 "해당 교사 B 씨가 입학식도 하지 못한 신입생들을 위해 나름대로 뜻깊은 준비를 하면서, 사진을 보고 아이들의 기를 살려주는 칭찬의 의미로 여러 가지 외모에 대한 표현의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라고 해당 교사의 입장을 전했다.
이어 "자칫 외모지상적이고 성적 표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댓글을 달았는데, 앞으로는 외모나 신체적인 표현을 삼가고 학생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행동하겠다고 답변했다"는 조치 결과를 내놓았다.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 정상인가요'라는 글을 올려 울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문제 행동을 지적한 글쓴이가 해당 내용을 국민신문고에 신고를 해 울산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받은 답변/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
이런 사실이 알려지며 교육청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 누리꾼은 "사건 자체도 기가 막히지만, 울산교육청 발언은 더 기가 막힌다. 누가 아이들 기를 살려주는 칭찬으로 초등 1학년한테 '섹시'하다고 하냐. 성인인 직장 동료한테도 그런 말 쉽게 못 하겠다"라며 "선생들의 행동에 엄격해야 할 교육청이, 선생의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행동을 오히려 두둔하는 거냐"라고 비판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 두렵다고 불안감을 토로하는 학부모도 있다. 또래 자녀를 두고 있다고 밝힌 학부모 C 씨는 "이제 세상에 첫발을 내 딛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현장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화가 나고 소름이 끼친다"라며 "더 화가 나는 건 이런 사태를 알고도 유야무야 넘어가려고 했던 교육 당국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날 논란이 확산하자 교육청은 뒤늦게 B 교사를 업무에서 배제하고, 담임교사 교체, 징계 여부를 결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교육 기관의 이런 조처를 두고 성인지 감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는 학교 내 성 착취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피해 민원에 대한 교육 당국의 제대로 된 성 의식과 신중한 대응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아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교육 당국의 답변은 피해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가해자의 변명을 받아 그 입장을 그대로 받아 쓴 것에 불과하다"라면서 "학부모 입장에서는 문제를 의식하고 문제제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원 접수를 받는 교육 당국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2018년 이후 스쿨미투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학교 내에서는 청소년·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 착취가 만연하고 있다"라면서 "특정 가해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다. 이런 일이 학교 내에서 계속 있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교사의 성인지감수성 교육을 강화하는 등 후속 조치를 취하고, 피해 민원에 대해서 교육 당국에서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고 답변할 것인지 신중하게 고려하고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B 교사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 글을 올리신 분이 우리 반 학부모라면, 저에게 개인적 연락이나 밴드를 통해 의견을 주셨으면 숙제를 변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며 "부모와 소통이 덜 된 상태에 과제를 내준 것이 실수다. 죄송하다"라고 해명했다.
이 입장문을 받은 A 씨는 "숙제를 바꿀 수 있었던 게 문제가 아니다"라며 "B 교사 본인 행동에 문제인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