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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이슈 천태만상 가짜뉴스

불거진 ‘김정은 건강이상’ 說·說·說… SNS 타고 순식간 확산 [‘北 가짜뉴스’ 왜 판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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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술설·사망설 미확인 정보 홍수 / 北 특유 폐쇄성 탓 사실 확인 안 돼 / 대북 소식통 인용보도 신뢰 의문 / 온라인 매체 여과 없이 정보 흘려 / 현송월 총살 보도 대표적 오보사례 / 우리정부 ‘北 이상징후 없다’ 견지 / “태양절 불참은 코로나 때문인 듯”

세계일보

“조선노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2020년 4월25일 0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지난 주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진 출처 분명 동영상의 첫 부분이다. 자못 비장하고 떨리는 북한 말투의 아나운서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망했다고 알리는 이 동영상은 사실과 다르다. 김 위원장의 직위를 국무위원장이 아닌 국방위원장으로 표기하고, 과거 김일성 주석 참배 장면을 짜깁기하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불거진 이후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정보가 29일 넘쳐나고 있다. 사실 확인이 어려운 북한뉴스의 특성이 SNS를 타고 정보가 순식간에 퍼지는 환경과 만나 벌어지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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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미국 CNN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보도했다는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와병설·시술설·사망설… ‘설’만 난무

최근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퍼지는 과정을 보면 확인이 어려운 북한 관련 정보가 우리 사회에서 유통되는 방식을 추적해볼 수 있다.

신변이상설은 지난 15일 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으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금수산태양궁전은 김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다. 김 위원장은 집권 후 태양절마다 이곳 참배를 빠뜨리지 않았기 때문에 뭔가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무렵 김 위원장의 건강과 관련된 ‘첩보 수준 정보’라는 출처 없는 글이 SNS를 통해 ‘지라시’ 형태로 돌았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 위중한 상태이며, 북한 내부의 권력싸움이 심각하다는 등의 내용을 상세히 다룬 것이었다.

김 위원장의 상태와 관련된 언론 보도도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0일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는 김 위원장이 지난 12일 평안북도 묘향산지구의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고 인근 향산특각(별장)에 머물며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음 날 미국 CNN방송이 ‘미국 정부는 김정은이 수술 후 심각한 위험에 빠졌다는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해당 보도를 인용하면서 전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국내외 언론이 이를 인용해 보도하고 중태설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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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망했다고 알리는 가짜 동영상. 유튜브 캡처


유튜브 등에서도 관련 콘텐츠가 쏟아지면서 시술 또는 수술설은 후유증으로 인한 위중설에 이어 의식불명설, 급기야는 사망설로 확대되며 점점 심각해졌다. 김 위원장이 초고도비만에 술과 담배를 즐겨 평소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런 설은 나름 설득력을 얻었다.

김 위원장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 상태는 여전히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일관된 공식 입장은 특이동향이나 이상징후가 없다는 것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질의에서 “특이동향이 없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입장”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태양절 참배에 불참한 것에 대해서는 “올해 김일성 생일과 관련해 경축대회, 경축위원회, 중앙보고대회 등이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취소됐다”며 “금수산 참배도 축소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최근 잠행이 신변 문제가 아닌 코로나19 상황 때문이라는 추측에 무게를 싣는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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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송월 총살설 등 북한 오보 많아

북한 관련 보도는 확인이 어렵다는 점에서 뒤늦게 사실관계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숙청됐다던 주요 인사가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잘못된 정보였음을 확인하게 되는 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8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음란물 제작 혐의로 총살됐다는 보도다. 하지만 현 단장은 이듬해 5월 북한 전국예술인대회에 멀쩡히 등장했다. 이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북한 예술단을 이끌고 방남하고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해 문재인 대통령도 만나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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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처형된 2013년 12월 직후에도 ‘장성택 라인’의 숙청설이 쏟아져 나왔다. 최룡해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2014년 5월 총정치국장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신변에 문제가 있거나 숙청됐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이후 그는 건재하다는 것이 확인된 뒤에도 잊을 만하면 실각설에 휘말렸지만 현재까지 2인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는 남편이 처형된 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숙청설, 와병설, 독살설까지 소문이 꼬리를 이었다. 무려 6년여 만인 올해 초 그가 김 위원장 부인 리설주와 김여정 당 제1부부장 사이에서 설 기념 공연을 관람하는 사진이 공개돼 생존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처럼 유독 북한을 둘러싸고 추측이 무성한 것은 북한 특유의 폐쇄성 때문이다. 북한 현장 취재가 불가능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제한적인 데다 확인할 방법도 거의 없는 것이다. 이런 소식들은 주로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나오지만 소식통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최근 들어 다양한 온라인 매체가 활발하게 활용돼 잘못된 정보가 순식간에 광범위하게 확산되기 쉬운 환경이 갖춰지면서 정보의 여과작용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다.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을 둘러싼 미확인 소식의 양산도 공식 활동 등 그의 모습이 공개될 때까지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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