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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장경덕 칼럼] 증시, 얼음 위 불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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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누군가는 세상이 불로 끝나리라 하고, 누군가는 얼음으로 끝나리라 하네.'(로버트 프로스트)

지구촌 경제에는 불과 얼음이 공존한다. 실물경제는 한겨울처럼 얼어붙어 있다. 증시는 얼음 위 불꽃처럼 타고 있다. 초현실적인 광경이다. 결말은 누가 알 수 있을까.

세계의 경제 대통령인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실물경제의 V자형 회복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하반기부터 미국 경제가 느리게 회복하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중요한 전제를 달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2차 확산이 없다면 그렇다는 말이었다. 이번 분기 미국 성장률을 연율로 계산하면 마이너스 20~30%가 될 것이다. 일본 경제도 그에 버금가는 속도로 뒷걸음질할 것이다. 중국은 지난 분기에 연율로 30% 넘는 역성장을 했다. 같은 셈법으로 하면 한국의 1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 5%대다.

하지만 자본시장은 실물경제와 따로 놀고 있다. 미국 나스닥지수는 완벽한 V자를 그리며 반등했다. 디지털 혁명의 총아 FAMAA(페이스북·애플·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의 모회사 알파벳)가 가장 먼저 튀어올랐다. 다른 시장들도 V자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코스피보다 코스닥의 궤적이 V자에 가깝다.

물론 얼음 위의 불꽃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많다. 지금 글로벌 경제의 충격은 지구촌에 살아 있는 사람 대부분이 난생처음 겪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끝내 극복되지 않은 위기가 있었던가. 중앙은행들은 언제든 헬리콥터처럼 돈을 뿌릴 수 있다. 그들이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으로 치닫는 것을 보고만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제롬 파월의 연준은 심지어 정크 본드까지 사주겠다고 했다. 자산시장 참여자들은 풋옵션을 가진 투자자와 같다. 일정 수준을 넘는 손실을 보지 않고 자산을 팔아버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 셈이다. 각설하고 실세금리가 0% 안팎으로 떨어진 마당에 자산시장에 베팅하는 것 말고 다른 수가 있는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말한 '자본소득자들의 안락사'를 그저 앉아서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반론도 그만큼 많다. 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 악화가 불 보듯 뻔하다. 실물경제의 거울이라는 자본시장이 혼자 잘나갈 수 있는가. 투자와 소비를 살리려고 퍼부은 유동성이 투기적 거품만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잘못된 위기 대응이 더 큰 위기를 불러오는 것 아닌가.

양론은 끊임없이 부딪칠 것이다. 분명한 건 실물경제와 자본시장이 언제까지나 따로 놀 수는 없다는 점이다. 얼음 위의 불꽃이 허망하게 꺼져버리는 건 최악의 결말이다. 지금 실물경제는 얼음장 같다. 증시는 미래를 본다. 불꽃 같은 증시는 그만큼 실물경제 회복을 낙관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냉철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우리는 과연 미래를 낙관해도 좋은가. 미래를 낙관해도 좋을 만큼 적극적으로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는가.

우리 경제는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미·중이 격돌하는 글로벌 무역전쟁과 금융전쟁, 팬데믹 시대 패권을 가를 백신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줄어든 일자리와 늘어날 세금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이냐를 놓고 벌어질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 내전도 치러야 한다. 온갖 전쟁에서 끝내 살아남을 소수의 승자는 더 강해질 것이다. 자본시장은 이미 냉혹하게 승자를 가려내고 있다. 패자의 도태는 가차 없을 것이다.

팬데믹 시대는 엄청난 부조리극으로 끝날 수도 있다. 혹은 그 와중에 창조적 파괴의 대전환이 이뤄질 수도 있다. 기존 질서와 기득권이 무너진 후에 나타날 새로운 세계는 더 평등할 수도 있고 더 극단적인 불평등을 낳을 수도 있다. 격변은 더 자주 찾아올 것이다. 좋았던 옛 시절 같은 건 빨리 잊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미래를 낙관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비관적인 사람처럼 준비해야 한다.

[장경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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