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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북한 김정은의 인스타그램[사진기자의 ‘사談진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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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스타그램(왼쪽 사진)과 유튜브 계정. 스마트폰으로 국내에서도 접속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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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변영욱 사진부 차장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달 12일 미국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북한을 ‘은둔의 왕국(Hermit Kingdom)’이라고 표현했다. 북한으로서는 한때 정상회담까지 했던 미국이 자신들을 보통 국가가 아닌 특이한 국가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못마땅할 수도 있겠다.

국제사회의 오해를 해소시키기 위해서일까. 최근 북한은 영상 정보를 외부에 많이 노출시키고 있다. 북한의 신문과 방송을 통해 외국으로 전해지는 김정은의 사진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에 비해 많고 빈도도 잦다. 또 북한은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친숙한 매체인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사진 위주, 유튜브는 동영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조선중앙통신에서 촬영한 사진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올라오는 인스타그램 계정(northkorea_dprk-newssite)은 북한 당국이 공식 관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직후인 2012년 5월 시작된 이 계정에는 현재 누적합계 2100여 개의 피드(글)가 게시돼 있다. 전 세계에서 2만9000명이 팔로잉을 하고 있는데 이곳은 마치 유명 연예인의 인스타그램처럼 김 위원장 개인의 활동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가득하다. 글에 붙는 설명은 주로 영어로 되어 있다.

이달 1일 사망설을 일축하며 비료 공장 준공식에 등장해 빨간 리본을 가위로 자르는 김정은의 인스타그램 사진에는 ‘좋아요’가 900개 이상 달렸고 1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좋아요와 댓글의 아이디는 한국이나 북한 사람은 거의 없고 남미와 아프리카 출신 또는 비공개 계정이다.

북한의 디지털 선전 활동이 북한 내부 주민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목적보다는 외부 세계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는 최근 유명해진 유튜브 채널(Echo DPRK)에 올라온 영상들이다. 기존 북한 관영 매체들의 보도로 채워졌던 외국어 유튜브 계정과 달리 이 채널은 주인이 개별 시민인 것처럼 연출되고 있다. 2017년 8월 개설된 이 채널의 주인은 자기 소개 글에 ‘북한의 일상생활에 대한 영상을 공유하고자 한다’며 개설 취지를 밝히고 있다. 구독자는 7000명이 조금 넘고 현재 149개의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김정은 건강 이상설로 평양 시내 상점에서 사재기가 횡행한다는 미국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가 나오자 ‘은아’라는 젊은 여성이 유창한 영어로 평양 시내 상점을 돌며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킨다. 은아라는 개인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드론 촬영과 배경 음악, 그래픽 등이 수준이 높아 전문가 팀이 만드는 작품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전문가 냄새가 나는 화면은 이미지 뒤에 권력 또는 권력을 옹위하려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래서 이 영상에는 10% 정도의 ‘싫어요’가 있다. 확증 편향을 갖는 추종자들이 주로 보는 유튜브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결코 적지 않은 비율의 반대 표명이다.

자유로운 언론 활동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의 콘텐츠는 중요한 볼거리이고 정보원이다. 북한을 직접 방문할 수 없는 전 세계 누리꾼들은 북한이 제공하는 이미지로 그 사회를 본다. 북한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하는 전 세계를 향해 북한이 활용하는 디지털 선전법은 일견 성공적인 방법처럼 보인다. 게다가 노동신문이나 우리민족끼리 등 전통적 방법의 인터넷 사이트들이 국내에서 접속이 안 되는 것과 달리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는 현재 누구나 접속할 수 있다. 북한이 한국에도 자신들의 주장을 그대로 주입할 수 있는 채널인 셈이다.

이런 완벽한 선전의 장에서, 그것도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는 영상을 통해 최고 지도자의 이미지를 선전할 수 있다는 것에 북한은 희열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지가 중요한 현대 사회에서 국가 홍보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인의 감수성과 미디어 해석 능력을 고려한다면 뉴미디어를 활용한 북한의 선전 효과는 높지 않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젊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상과 능력을 자유롭게 공유하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 중 ‘은아’처럼 개인의 계정과 채널을 열고 평범한 일상을 남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사람은 없다. 인터넷 시대지만 북한 주민들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고 권력을 가진 특권층만 첨단 기술을 이용한다고 할 수 있다. 시민의 일상은 보이지 않고 권력의 화려함만 보이는 북한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가 과연 세계의 젊은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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