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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사람을 듣는 시간]우연한 ‘위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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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병간호차 병원 5인실에서 며칠을 보냈다. 병실 생활은 심란한 일이지만 평소에 마주칠 일이 없을 사람들과 한 공간을 써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연히 잠시 만난 사람들의 위로 공동체다.

식사 시간이 되자 한 간병인이 밥을 남길 것 같으면 미리 덜어서 달라고 부탁했고, 환자들은 매번 환자식을 미리 조금씩 덜어 그 간병인에게 모아주었다. 딱 보기에도 많아서 남기는 밥이 아니었다. 누군가 밥 굶는 걸 두고 보지 못하는 것이다.

경향신문

정은 소설가


간병인들은 병실에서 살다시피 한다. 식당에 간다고 자리를 오래 비울 수도 없고, 병원 일반식을 매번 사 먹기는 힘들 것이다. 누군가 도시락을 매번 싸다 주기도 어렵다. 전국의 수많은 간병인이 식사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돌봄노동은 중요하지만 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고 그 일을 하는 것은 대개 중년 여성이다.

이 간병인이 돌보고 계신 할머니는 97세이신데, 당뇨합병증으로 다리 수술을 하셨고 치매를 앓고 계셨다. 수녀님이 찾아오셔서 할머니와 머리를 맞대고 한참 동안 속삭였다. 기도해 주고 가신 줄 알았는데 할머니의 따님이셨다. 아픈 내색을 안 보이시던 할머니가 따님이 가고 나자 간병인에게 왼쪽 발의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하셨다. 당뇨합병증으로 절단 수술을 받은 발이었다. 이미 상실된 것은 치료할 수가 없다. 없는 발의 통증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할머니도, 그걸 듣는 사람도 난처하다. 하지만 통증을 호소할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인 것이다. 그 아픔을 같이 잠시 공유하고 위로를 드릴 수가 있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권장되는 공간인 병원의 존재가 문득 감사했다.

할머니는 또 환자복에는 없는 주머니도 계속 찾으셨다. 없는 주머니를 왜 찾으시냐고 여쭙자, 주머니에 묵주를 넣고 기도하러 성당에 가야 한다고 대답하셨다. 97세 할머니의 기도 내용이 무엇일지 짐작조차 안 가지만, 그 기도가 이뤄지시길 병실에 있는 모두가 속으로 대신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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