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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정동길에서]가쿠타니와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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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코 가쿠타니는 영어권에서 가장 유명한 서평가로 꼽힌다. 1979년부터 2017년까지 뉴욕타임스에 서평을 썼고, 1998년엔 비평 분야 퓰리처상을 받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텔레비전 시리즈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는 도도한 주인공 캐리가 책을 낸 뒤 가쿠타니의 서평을 받고 기뻐하는 장면도 나온다.

경향신문

백승찬 사회부 데스크


그렇게 오랫동안 글을 써온 가쿠타니지만, 자신의 이름을 건 책은 단 두 권이다. 1989년에 낸 인터뷰집 <피아노 앞 시인>과 뉴욕타임스 퇴직 후인 2018년 낸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돌베개)다. <진실 따위는…>에서 가쿠타니는 전공인 서평이 아니라 정치·사회 비평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수전 손태그의 글에 신랄한 비평을 가했던 가쿠타니는 이 책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시대를 타격 목표로 삼는다. 트럼프는 한 개인이지만, 그를 미국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사회 현상이다. 트럼프는 한국이 미국의 안보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거나, 미국 경제가 사상 최고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거짓말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소독제에 약하다고 하니, 확진자 몸에 소독제를 주입하면 어떻겠냐고 공개 석상에서 제안하기도 했다. 대체 이런 거짓말쟁이, 허풍선이, 무식쟁이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나. 책의 원제대로 왜 ‘진실의 죽음’(The Death of Truth)이 일어났나.

가쿠타니는 ‘정보 선택의 자유’를 그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검증되지 않은 주장,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개인과 매체가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함께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미국에선 버락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무슬림 종교 의식을 치렀다거나, 힐러리 클린턴이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가짜뉴스가 퍼졌다. 너무 황당해 믿기 어려운 이런 주장들은 진실과 허위의 경계가 흐려진 틈을 타 스멀스멀 퍼졌다. 한국에선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민경욱 의원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의혹, 우파논객 조갑제씨조차 부정하는 ‘5·18 북한군 개입설’ 등이 이런 사례다. 터무니없는 주장들은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주류 언론들조차 ‘거짓 등가성’(false equivalence)의 함정에 빠져 이런 주장들을 다루곤 한다. 소수의 그릇된 견해에 어울리지 않게 큰 관심을 주는 것이다. 마치 과학시간에 진화론과 창조론을 같은 비중으로 다루라고 주장하는 격이다.

가짜뉴스는 저절로 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부정선거는 없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글을 작성하지 않는다. 음모론에 빠진 열정적인 시민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퍼뜨린다. 가쿠타니는 이를 ‘열정의 비대칭성’이라고 표현한다. 돌아보면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둘러싼 의혹을 두고도 양측의 열정적인 시민들이 세상이 쪼개지는 듯한 여론전을 펼쳤다. 검찰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해 제약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조 전 장관 일가가 특권을 누린 것도 사실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침묵했다.

진실과 거짓 구분하지 않는
허무주의자는 되지 말되
무엇에도 확신하지 않는
회의주의자 되기
‘탈진실 시대’의 세상은
그런 저널리즘을 받아들일까

마음에 드는 뉴스를 골라주는 검색엔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묶어주는 소셜미디어는 시민들을 ‘편파적 저장탑’에 몰아넣었다. 평소 생각과는 다르지만 고려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견해들은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기존 견해를 강화하는 정보만을 흡수한다. 그리고 기존 견해를 한층 강화한다.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씨가 이 책의 해제를 썼다. 첫 문장은 흥미롭게도 “나는 이 책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이다. 가쿠타니가 모더니스트의 자세로 세상 어딘가에 있는 진실을 추구한다면, 정희진씨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방법론으로 “언어의 의미는 진위가 아니라 경합의 과정에서 생성”된다고 말한다. 정희진씨는 ‘하나의 진실’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동반될 수 있는 피와 폭력을 우려한다. ‘트럼프는 거짓말쟁이’라고 폭로하기보다는 ‘트럼프의 목소리를 상대화’하자는 것이다.

가쿠타니는 “어디서든 뉴스를 알리려 애쓰는 저널리스트들”에게 이 책을 바쳤다. 현재 한국 사회 속 언론의 위상을 생각하면 생각하기 어려운 헌사다. 남은 방법은 가쿠타니·정희진의 절충일 수밖에 없다. 진실에 근접하려 애쓰되, 복수의 진실이 있을 가능성을 고려하기.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않는 허무주의자는 되지 말되, 무엇에도 확신하지 않는 회의주의자가 되기. 세상은 그런 저널리즘을 받아들일까. 받아들이지 않아도 할 수 없다. 그런 세상도 세상이다.

백승찬 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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