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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만물상] 공인인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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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생활 필수가 되면서 수많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관리하는 게 큰일이 됐다. 특히 금융기관이나 관공서 같은 곳은 비밀번호 조합을 까다롭게 요구한다. ‘영문 대문자와 소문자, 숫자와 특수문자를 포함한 10자 이상’의 비밀번호를 어떻게 외우겠나. 코레일과 SRT는 약속이나 한 듯 아이디 대신 열 자리 숫자로 회원번호를 부여한다. 적어놓는 수밖에 없다. 해외 직구가 흔해지면서 개인통관고유부호라는 것도 생겼다. 영문과 숫자 합쳐 무려 13자다.

▶비밀번호 한번 바꾸려면 희미하게 써놓은 보안 코드를 옮겨 쓰기도 하고 '아래 사진 중 자동차가 있는 사진을 모두 고르시오' 같은 문제도 풀어야 한다. 그렇게 고생하고 짜증 내며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을 때 만나는 절벽이 바로 공인인증서다. 공인인증서가 없으면 인터넷 뱅킹도 안 되고 주민등록등본도 주민센터에 가야만 뗄 수 있다. 특히 해외 유학생이나 교포들은 공인인증서 한번 발급받으려다가 혈압 올라 죽을 뻔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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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려고 대법원 사이트에 들어갔다. 공인인증서가 자동으로 뜬 것까지는 좋았는데 비밀번호가 틀렸다고 한다. 3회 연속 틀리면 공인인증서를 다시 띄워야 한다. 그럴 리가 없어 10분을 낑낑거리다가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크롬 대신 익스플로러로 접속하세요"라는 도움말이 있었다. 나중에 보니 비밀번호가 틀린 게 아니라 익스플로러를 쓰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

▶공인인증서는 1999년 전자서명법 발효와 함께 생겨났다. 금융거래나 민원서류 발급, 세금 관련 업무에 주로 쓰인다. 유효기간이 1년으로 너무 짧고 만료 한 달 전에 갱신하지 않으면 재발급받아야 한다. 한번 재발급받으면 공인인증서가 필요한 모든 사이트를 찾아가 일일이 재등록해야 한다.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보안 프로그램을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끝없이 깔게 하는 것도 큰 불만이다. 예전에 중국인들이 한국 인기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이 입고 나온 코트를 사겠다"며 한국 쇼핑몰에 접속했다가 공인인증서가 없어 못 샀다고 했을 정도다.

▶공인인증서의 최대 맹점은 금융 사고의 책임을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전가한다는 것이다. 해킹당한 공인인증서로 남의 돈을 빼가도 은행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런 공인인증서의 독점적 지위를 없애도록 전자서명법이 바뀐다고 한다. 앞으로는 지문이나 홍채를 이용한 생체 인식 서명이 훨씬 많이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어르신들이 인터넷 쓰기도 조금은 쉬워질 것 같다.

[한현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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