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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운영자 고발돼도 절반이 ‘불기소’ 실형땐 “잠깐 놀다 나온다” 여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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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과 불법도박, 범죄의 공생]②성착취물 유통사이트 처벌 실태

‘초범’에 ‘반성’한다며 미온적 대응

기소땐 집유나 벌금형에 그치고

실형은 1년 6개월 수준 머물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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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착취와 싸우는 시민단체가 불법도박 사이트 등과 공생 관계를 맺은 성착취물 유통 사이트 100여곳의 운영자 등을 경찰에 고발하고 1년여 만에 수사 결과를 전수 조사해본 결과, 절반에 가까운 사건에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는 2018년 6월 성착취물 유통 사이트 126곳을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음란물 유포죄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19일 <한겨레>가 이 사이트 명단을 받아 직접 확인한 결과, 126곳 가운데 대부분의 사이트는 운영이 중단됐거나 주소를 바꿨고 16곳만 운영되고 있었다. 이 16개의 ‘유사 소라넷’ 사이트는 모두 불법도박 사이트 광고를 게시하거나 불법도박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둔 것으로 나타났다. ‘유사 소라넷’이 대부분 성착취물을 매개로 불법도박 이용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한겨레

하지만 이 사이트 운영자와 유포자들은 처벌을 받지 않거나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한사성은 126곳을 고발하고 1년2개월이 지난 지난해 8월 자체 확보한 검찰의 불기소 이유서와 법원 판결문 등을 바탕으로 고발 결과를 전수 조사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한사성의 전수 조사 결과를 보면, ‘유사 소라넷’ 사이트 126곳의 운영자와 유포자 등 경찰에 접수된 사건은 모두 186건이었는데 불기소 처분이 나온 사건은 85건으로 45.7%나 됐다. 186건 가운데 수사 중이거나 수사 결과를 확인하기 어려운 12건을 제외하고 기소된 사건은 89건이었다.

불기소 이유로는 대부분 피의자가 초범이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피의자는 전과 없는 초범이고 ○○대학교 학생이며 게시한 사진이 1개에 불과한데다 피해자 얼굴이 촬영되지 않아 피해 정도가 비교적 중하지 않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서울남부지검), ‘게시한 사진이 자신이 촬영한 사진이 아니고 사진에 등장하는 여성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다고 주장해 증거불충분’(서울서부지검), ‘피의 사실은 인정되나, 피의자는 동종 범죄전력이 없는 회사원으로서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면서 재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서울중앙지검) 등과 같았다. 인천지검에선 ‘헤비 업로더(인터넷 사이트에 콘텐츠를 대량으로 올리는 사람)가 아니’라는 이유로 재범 방지 교육 이수 조건 불기소 처분과 기소유예 처분이 난 사건도 있었다.

기소된 사건들 역시 대부분 미온적인 처벌에 그쳤다. 기소된 사건 89건 가운데 구약식(검찰이 경미한 사건에 대해 정식 공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 벌금을 구형하는 것) 처분을 받아 가벼운 벌금을 내고 마무리된 사건이 37건으로 41.6%나 됐다. 정식으로 기소된 경우에도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한겨레>가 정식 재판으로 넘겨진 52건 가운데 11건의 판결문을 직접 입수해 확인해보니, 절반이 넘는 6건이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실형을 선고받은 5건도 징역 10개월~1년6개월 수준에 머물렀다. 특히 한 불법촬영물 유포자는 피해자가 자신의 집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불법촬영한 뒤 이 사진을 성착취 사이트에 올렸는데도 초범이고 해당 성착취 사이트를 탈퇴했다는 등의 이유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가 나왔다.

불법도박과 연계된 ‘유사 소라넷’ 업계 내부에선 이런 미온적 처벌 관행 때문에 운영자 등이 실형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탕을 노린다고 증언했다. 한 불법도박 사이트 관계자는 <한겨레>와 만나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를 같이 운영하던 불법도박 사이트 운영진이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변호사를 잘 사서 최대 1년6개월만 지나면 출소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사이트 쪽에서 월 수익을 보장해주고 최대한 빨리 나올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한다”며 “구속된 사람들은 ‘놀다 나온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 와중에도 사이트는 정상적으로 운영된다”고 털어놨다.



※사진이나 영상의 불법촬영·유포, 이를 빌미로 한 협박,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지지동반팀(02-2275-2201, digital_sc@hanmail.net), 여성긴급전화 1366,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02-735-8994, www.women1366.kr/stopds),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02-817-7959, hotline@cyber-lion.com), 십대여성인권센터(010-3232-1318, teen-up.com@hanmail.net)에서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02-312-8297)에서도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 상담과 법률 지원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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