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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여자의 삶’엔 돈버는 기회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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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돌봄·가사서비스 분야 스타트업들 순항

주부로서 겪는 불편에 집중해 사업기회 창출

아마존 판매 1위·대규모 투자유치 등 성과도

헤럴드경제

여성으로서 일상생활의 불편을 개선하는 아이템으로 창업에 성공해 성장가도에 들어선 스타트업들이 늘고 있다. 왼쪽부터 김지영 라엘 COO, 김희정 째깍악어 대표, 연현주 생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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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삶엔 돈버는 기회가 숨어 있다.”

여성으로서 생활의 불편을 해소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아이템으로 창업에 성공해 성장가도에 들어선 3명의 스타트업 대표들이 눈길을 끈다.

생리대 제조사 ㈜라엘은 P&G 등 글로벌 기업들이 수 십년 간 주도해온 생리대 시장에서 유기농 제품으로 아마존 판매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국계 여성 3명(아네스 안, 원빈나, 백양희)이 창업했다. 최근엔 삼성물산 최연소 임원 출신인 김지영 씨를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영입했다.

생리대는 소비자들이 기존에 쓰던 제품을 관성대로 소비하기 때문에 신규 브랜드의 진입이 쉽지 않은 시장이다. 라엘이 이를 뚫고 아마존 입성 1년만에 매출 20억원을 올린 비결에 대해 김 COO는 “소비행태의 변화 덕분”이라 분석했다.

그는 “과거에는 주어지는 대로 소비했던 행태가 건강, 안전, 환경을 따져 소비자가 주도적으로 소비하는 식으로 바뀌면서 생리대도 ‘내 몸에 좋은 제품’이 유리하게 됐다”며 “소비채널이 온라인으로 변하면서 기업이 유통망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는 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 제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라엘의 주 소비층은 내 몸에 좋은 것을 까다롭게 고르는 25~35세인 밀레니얼세대다. 이들이 ‘여성들이 만든, 여성을 위한 기업’이라며 보내는 신뢰는 라엘의 큰 자산이다.

김 COO는 “우리 제품을 권하는 것보다 ‘유해 성분들은 피하고, 네 몸에 좋은 것을 쓰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든든한 큰 언니’ 같은 브랜드로 자리잡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라엘은 다양한 여성 소비재로 영역을 넓혀나갈 예정이다. 동물성 원료를 쓰지 않은 화장품, 일명 ‘비건뷰티’ 제품은 이미 출시했다.

김 COO는 “여성들은 생리주기 때문에 피부트러블 등 불편을 겪는다. 불편을 덜어줄 수 있는 스킨케어나 바디케어 제품 등 다양한 소비재로 확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는 올 여름 탐폰 등 신제품을 출시하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홍콩 왓슨스 매장과 중국에 공식 진출할 계획이다.

김희정 째깍악어 대표와 연현주 생활연구소 대표도 워킹맘으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창업한 경우. 김 대표는 “여성 대상 시장의 가능성을 판단하기에 앞서 직장생활 하면서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서 시작한 사업”이라고 토로했다.

“아이가 유치원, 학교를 들어가도 육아 공백은 불시에 찾아옵니다. 요즘처럼 집단 감염병이 발생하거나, 태풍으로 유치원은 쉰다는데 부모는 회사 가야하는 경우도 있고요. 갑자기 야근이 잡혀서 지금부터 3시간 후에 아이를 하원시키고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지기도 합니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육아 서비스는 접근성이 아쉬웠어요.”

김 대표는 아예 회사의 사명을 ‘육아가정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 어디서건 해결한다’로 정했다. 앱으로 신청하면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 등 전문 자격증을 소지한 선생님들이 소비자 수요에 맞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류심사, 현장 면접, 동영상 프로필 심사 등을 거쳐 선발된 선생님만 3500명에 달한다. 째깍악어는 기존 돌봄 서비스 업체들과 달리 롯데월드몰에 ‘째깍섬’ 등 오프라인 돌봄 거점도 만들었다. 다양한 돌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꼼꼼한 서비스 관리로 호평받으며 지난 3월 시리즈A로 63억원 가량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향후 초등학생 대상 돌봄이나 기업과의 연계를 통한 서비스 제공(B2B)을 더 확대할 계획도 짜고 있다. 김 대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기업들도 초등학생 돌봄 공백을 많이 생각하게 됐다. 초등학생을 양육하는 직원들은 기업의 출퇴근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며 “직원들이 아이와 함께 출근해 돌봄 서비스를 받는 식으로 ‘포스트 코로나’에 맞는 육아 방식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연현주 생활연구소 대표는 세 아이를 키우며 일하느라 동원한 도우미만 해도 족히 100명은 넘는다는 ‘베테랑 워킹맘’이다. 연 대표가 경험을 바탕으로 진단한 가사서비스 시장의 문제점은 도우미 교체시의 불안감과 구분되지 않는 육아·가사 서비스 등 두 가지였다.

그는 “도우미가 바뀔 때 워킹맘들이 사표를 고민할 정도로 걱정을 많이 한다. 몇 년간 아이와 가사를 봐주던 분이 갑자기 없어질 때의 불안감을 없애주고 싶어서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가장 적합한 매니저를 소개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짜는데 주력했다”고 소개했다.

또 “기존 시장은 가사도우미가 아이 돌보는 일을 함께 하다보니 어느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육아와 가사를 분리하고 서비스를 세분화해야 가사나 육아가 만족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고 전했다.

가정 청소서비스 전문화를 위해 그는 ‘청소연구소’라는 브랜드를 따로 만들어 매니저들에게 청소교육도 하고 있다. 20년 경력의 주부라도 해도 절대 전문가라고 할 수 없다. 고객의 집을 청소하는 건 전문가로서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을 꼭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 대표는 “주방, 화장실 등 시간 안에 서비스를 마칠 수 있는 효과적인 동선부터 청소용품 파손이나 비상상황 대처법, 서비스업의 기본 자세까지 매니저들에게 교육한다. 서비스관리를 꼼꼼하게 하는 만큼 매니저들에게는 높은 시급, 파손보험 전액 지급 등으로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대표와 연 대표는 육아·가사 서비스 제공 플랫폼에 대해 ‘여성을 위한 시장’이라 부르는 것에는 손사래를 쳤다.

연 대표는 “요즘은 맞벌이가 많아, 가사와 육아는 남녀 모두의 숙제”라며 “이제는 가정, 회사, 국가 모두가 일·가정의 양립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갖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애는 엄마가 봐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라며 “아이들에게 육아는 남녀가 함께 하는 게 당연한 것이란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째깍섬에 남자교사를 채용하기도 했다”고 했다.

도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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