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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일상이 된 폭언·폭행·반말… ‘갑질’에 지친 경비원 "하인 된 기분" [극한직업 내몰린 경비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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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서글픈 임·계·장
말로만 끝나는 처우개선
폭언·폭행 4년동안 3000건 육박
소수 입주자가 집요하게 괴롭혀
고용 구조부터 바꿔야
용역업체와 단기 계약에 눈치만
행정관청 신고·조사 시스템 필요


파이낸셜뉴스

서울 강북구 소재 아파트 주민의 폭행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을 추모하기 위한 촛불이 경비실 앞에 놓여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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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 강북구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최모씨(59)가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씨는 "저처럼 경비가 맞아서 억울한 일 당해서 죽는 사람 없게 꼭 밝혀달라"는 음성유언을 남겼다.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최씨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동의자 41만명을 넘어섰다. 경비원에 대한 갑질이 논란이 될 때마다 여론의 관심은 집중되지만 상황은 악화될 뿐 나아지지 않고 있다.

■경비원 갑질, 개선은커녕 '악화'

지난해 9월 주택관리공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 6월까지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폭언·폭행 건수는 2923건에 달했다. 주취폭언·폭행이 1382건으로 전체의 47.3%였고, 흉기협박도 24건이나 발생했다. 경비원에 대한 폭언·폭행은 최근 5년간 15배나 증가했다.

일례로 2014년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에게 갑질 당한 50대 경비원이 분신을 시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지난 3월 경기도 한 아파트에선 입주자가 자신의 차에 주차 위반 스티커를 붙이려는 경비원을 폭행한 사건이, 지난해 7월에는 술에 취한 입주민이 60대 경비원의 뺨을 수차례 때려 다치게 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일선에서 근무하는 경비원들은 입주자에게 크고 작은 갑질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소수의 입주자가 경비원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이를 견디는 일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서울 종로의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A씨는 "술에 취해 막말을 하거나 노골적으로 하대하는 사람에 의한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며 "14시간 동안 야간근무를 하는 와중에 갑질까지 당하면 정신적으로 견디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1년 전 경비 일을 그만뒀다는 B씨는 "경비원으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눅이 들고, 내가 하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며 "언론에 보도되는 것만큼 큰 사건은 드물지만 자잘한 갑질이 일상처럼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갑질 벗어날 탈출구 만들어야"

아파트 경비원을 둘러싼 갑질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용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입주자들은 대표회의를 통해 용역업체를 결정하고, 용역업체는 경비원과 단기계약을 한다.

이 과정에서 입주자들은 막강한 권한을 획득하기 때문에 갑·을·병의 권력 관계가 형성된다는 지적이다.

직장갑질 119의 권두석 변호사는 "입주자의 눈 밖에 난 경비원은 용역업체와 재계약할 수 없게 된다"며 "입주자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경비원이 털어놓기 힘든 이유"라고 전했다.

권 변호사는 "갑질을 당하는 경비원이 문제 제기할 수 있는 탈출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갑질하는 입주민을 행정관청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행정관청이 객관적인 조사에 나서면 상황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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