任, 독자적 남북협력 추진 시사
‘5·24조치 실효’ 통일부보다 더 나가… “정부든 민간이든 최선의 안 짜내야”
외교가 “靑 대신해 제재완화 거론”… 美 “비핵화 없이는 어렵다” 재확인
농번기 맞은 北 들녘 21일 경기 파주시 오두산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개풍군 일대에서 주민들이 농사일을 하고 있다. 정부가 5·24 대북 제재 조치를 사실상 폐기한 데 이어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남북협력 촉진을 강조하고 나서 북한의 반응에 관심이 쏠린다. 파주=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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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초대 비서실장으로 2018년 비핵화 논의 국면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했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21일 남북 상황과 관련해 “정부든 민간 영역에서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안을 짜내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5·24 대북제재 조치의 사실상 폐기를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임 전 실장의 남북 협력 촉진 발언이 전해지면서 독자적인 남북 협력에 대한 여권 내부의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임 전 실장은 이날 공개된 대담 인터뷰에서 “북-미 간에 (대화가) 안 풀릴 때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며 “올해도 북-미 간 진전이 없다면 문 대통령은 미국과 충분히 소통하되 부정적 견해가 있어도 일을 만들고 밀고 가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임기 2년 내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문 대통령이 남북 협력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설명이다.
임 전 실장은 “지금처럼 제재를 너무 방어적으로 해석해서는 절대로 남쪽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며 대북제재에 지나치게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뜻도 밝혔다. 5·24조치가 실효성을 상실했다는 통일부의 발표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임 전 실장은 “대북제재 관련 사안을 조율한다는 취지로 운영하는 워킹그룹에서 통일부가 빠져야 한다. (워킹그룹은) 통일부에 독이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비핵화 보조를 맞추라고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는 미국에 대해 대북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빠지는 게 맞다고 응수한 셈이다.
이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백악관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청와대를 대신해 임 전 실장이 제재 완화를 정면으로 꺼내 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임 전 실장이 지난해 1월 청와대 퇴임 이후 남북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견해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4·15총선 압승을 통해 확보한 국정 주도권을 가지고 남북 관계의 고삐를 죄겠다는 것이 청와대와 여권의 구상인 셈이다. 임 전 실장 인터뷰는 총선 보름 뒤인 지난달 30일 진행됐다.
관건은 비핵화 논의의 중심축인 미국의 반응이다. 미 국무부는 이날 “남북 협력은 반드시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며 비핵화 조치가 없는 한 제재 완화는 어렵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백악관은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당시 북한이 제시했던 영변 핵시설 해체보다 더 높은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임 전 실장은 2018년 당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압박을 이겨냈던 과정을 밝히며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임 전 실장은 “비건 대표가 ‘오케이’하기 전까지는 (남북 소통을) ‘올스톱’하라는 압박을 가했다”며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대통령이 연락사무소 설치와 군사 합의에 관한 남북 간 합의 사항을 밀고 갔고, 비건 대표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남북이) 도장을 찍었다”고 말했다. 계속되고 있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도 임 전 실장은 “북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전략미사일을 실험·생산하는 문제와 재래식 무기를 개발하면서 훈련하고 시험하는 문제는 확실히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임 전 실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솔직하면서도 당당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북쪽이 의미 있는 입장을 낼 때는 표현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삶은 소대가리’ 같은 자극적인 표현들이 국내 여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부와 임 전 실장을 시작으로 독자적 남북 협력에 대한 여권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에는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6·25전쟁 70주년 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백악관뿐만 아니라 북한도 문 대통령의 협력 제안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은 여권의 딜레마로 꼽힌다. 곧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에 복귀하는 임 전 실장도 “(반관반민 성격의) 1.5트랙에서 남북 간의 협력을 지원하는 역할까지 해보고 싶다”며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등 북측 인사의 호응을 촉구했다.
이날 미래통합당 황규환 부대변인은 정부의 5·24조치 실효성 상실 발표에 대해 “천안함 용사들은, 그 용사들의 가족들은 북한을 용서한 적이 없다”며 “(정부는) 대북 사업 운운하기 전에 자국민의 아픔부터 돌볼 일이다”라고 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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