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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등교가 끝이 아니다[오늘과 내일/이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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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독서실 등 ‘학업 동선’ 방역도 중요

노래방 PC방 이용 자제로는 빈틈 여전

동아일보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정말 잔인하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가리켜 한 말이다. 바이러스가 가족 친구 등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감염시키는 탓이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19 발생 상황을 보면 이 표현도 부족해 보인다. 참 잔인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똑똑한 바이러스다.

120일 넘게 이어진 상황을 되돌아보면 코로나19는 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한쪽을 막으면 어김없이 다른 쪽을 파고들었다. 처음 신천지예수교(신천지)를 시작으로 은혜의강교회 같은 종교시설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의료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경북 청도 대남병원, 봉화 푸른요양원, 대구 제이미주병원 등에서 많게는 200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왔다.

방역 초점이 주로 교회와 의료기관을 향하자 코로나19는 다른 틈을 찾았다. 서울 구로 콜센터는 그래서 아픈 기억이다. 물론 사업장을 방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콜센터 같은 형태의 밀집 사업장은 사전에 집중 방역 대상으로 관리했어야 했다. 비슷한 이유로 발생한 것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발 집단 감염이다. 클럽발 감염은 노래방과 주점 같은 공간을 발판 삼아 수도권에 산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바이러스가 방역망의 허점을 찾아 공격하면, 방역 당국이 수비에 나서는 형국이 이어지고 있다. 방역망의 빈틈을 치고 빠지는 코로나19 ‘게릴라전’이다.

교훈도 있다. 공격만큼 수비를 잘하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인천 팔복교회와 온사랑장로교회가 대표적이다. 클럽발 확진자로부터 감염된 학생 2명이 다닌 교회다. 그러나 신도 700여 명 중 확진자는 없었다. 두 교회 신도는 예배 때 늘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했다. 지정좌석제를 통해 거리 두기를 지켰다.

삼성서울병원도 눈여겨볼 만하다. 간호사 4명 확진 후 1000명이 넘는 의료진과 환자 중에선 아직 추가 감염이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 지인의 감염만 확인됐다. 물론 아직 검사가 진행 중이라 병원 내 확진자가 나올 수 있다. 그래도 방역 당국은 대규모 확산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이유가 있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전체 환자 186명 가운데 85명이 삼성서울병원에서 나왔다. 뼈아픈 경험은 감염병 대응 시스템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자 병원 안에서 ‘묵언(默言) 식사’ 지침까지 시행할 정도다. 교회와 병원 모두 방역 수칙만 제대로 지키면 나와 이웃을 지킬 수 있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시켰다.

5차례 연기 끝에 20일 고교 3학년의 첫 등교가 시작됐다. 하지만 첫날부터 75개 학교에서 정상 수업을 하지 못했다. 인천 66개 학교의 고3 학생은 21일 실시된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온라인으로 치렀다. 대구에서는 등교 후 처음으로 학생 확진이 확인됐다. 학교 가는 학생도, 이를 바라보는 학부모도 여전히 불안하다. 정부는 고3은 물론 다른 학년의 추가 등교 연기에도 부정적이다. 고3의 입시 준비를 감안해야 하는 정부의 고민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걱정스러운 건 등교를 생활 속 거리 두기(생활방역)의 마지막 단계로 여기는 정부 안팎의 시선이다. 자칫 ‘학교 방역’이 전부라는 신호로 비칠 수 있다. 등교는 재유행을 막기 위한 새로운 방역의 시작이다. 학교 밖 방역이 더 중요한 이유다. 교실과 급식실 소독만 신경 쓸 게 아니라 학원과 스터디카페, 코인노래방과 PC방 등 ‘학생 동선’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코로나19가 공격할 빈틈을 먼저 찾아내야 외부 유입으로 인한 학교 내 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래야 학업과 방역이 함께 갈 수 있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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