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수소, 국산화-수입처 다변화… 포토레지스트, 美듀폰과 손잡아
급한 불 껐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 日정부 허가 받고 수입 아직 많아
“국산화에 최소 5년 긴장 못 풀어”… 한국 수출 막힌 日기업이 더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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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정부와 기업이 나름대로 대처하며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은 껐는데 앞으로가 더 문제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인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21일 통화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한국의 대응 현황에 대해 이렇게 총평했다. 박 교수는 “일부 소재의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아직도 많은 것이 ‘메이드 인 저팬’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미중 분쟁 등의 대형 변수도 여전히 남아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한국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을 겨냥해 시작된 일본의 수출 규제가 11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시행 초기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은 일본 기업으로부터 공급받았던 고순도 불화수소(불산액), 포토레지스트(감광액),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소재 재고가 줄어들자 ‘이삭줍기’하듯 재고를 모으느라 비상이 걸렸다.
시행 1년을 앞둔 현재 시점에서 산업계의 분위기는 다소 달라졌다. 각 기업이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사업을 추진했고, 우회 수입 등 공급처 다변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 쓰이는 고순도 불화수소는 솔브레인과 램테크놀로지의 제품 사용이 급증했다. 반도체 회로를 그릴 때 쓰이는 포토레지스트는 미국 듀폰이 충남 천안시에 생산 공장을 만들기로 했고, 동진쎄미켐도 품질 고도화에 주력하고 있다. 또 SKC는 일본 의존도가 90% 이상이었던 반도체 공정 소재 블랭크 마스크의 시제품 생산까지 마쳤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소재·부품·장비 80대 품목의 재고량이 지난해 7월 1.3개월 치에서 올해 3월 말 기준 2.6개월 치로 9개월 만에 배로 늘어났다.
일본 내부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일 “일본 제품을 계속 사용했던 한국 기업의 조달 전략 전환은 일본 소재 업체의 실적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으로의 안정적인 수출길이 막히면서 일본 기업의 실적이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LG디스플레이에 불화수소를 공급했으나 수출 규제 이후 판매량이 줄며 올해 1분기(1∼3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2% 줄어든 스텔라케미파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산업계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이어지는 현재 상황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반도체 시장 사정에 밝은 산업계 관계자는 “세부적으로 보면 수출 규제 품목 중 국산화에 성공한 것은 액체 형태의 불화수소 정도이며 기체 불화수소나 포토레지스트는 수입처를 다변화해 물량을 확보했다. 아직 수출 규제에 따른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일본 정부는 한국의 숨통을 쥘 카드를 다양하게 쥐고 있기 때문에 ‘극일(克日)’이라는 표현을 벌써부터 꺼내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산업부는 최근 일본 정부에 “수출 규제 문제 해결과 관련해 일본 측의 구체적인 입장을 밝혀 달라”며 31일까지 답변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교수는 “소재·부품·장비 기술 개발과 국산화는 최소 5년을 바라봐야 하는 영역”이라며 “일부 성과가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기에 일본 정부와 협상해서 잘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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