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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정동칼럼]코로나 위기 속의 대학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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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은 불가항력의 재해가 아니라 인간이 저질러온 생태계 파괴, 급속한 지구화 등이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이 재난의 배후에 도사린 근대자본주의체제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역병은 되풀이해서 우리를 덮칠 것이다. 이제 인류는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헛수고 대신에 새로운 일상에 익숙해지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경향신문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그러나 새로운 일상은 수동적 적응의 문제만은 아니며, 적극적 창조의 도전이기도 하다. 기후위기, 사회적 양극화 등 근대의 모순을 넘어설 진정한 탈근대의 비전을 가져야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재난 자본주의’가 지칭하듯이 기성체제가 재난을 활용하며 오히려 강화될 수도 있다. 이미 숱한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의 대학 역시 기로에 처했다. 이럴수록 개혁의 후퇴 아닌, 한층 정교한 개혁안 마련이 절실하다.

해외 대학과 마찬가지로 국내 대학들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문을 걸어 잠그고 비대면수업으로 학사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방역 조치에도 상당한 재정이 필요한 터에, 학령인구 급감과 10년이 넘은 등록금 동결로 이미 형편없는 재정 상황은 악화일로이다. 코로나19가 경제를 멈춰 세우는 바람에 세수 급감이 코앞에 닥친 현실에서 정부의 고등교육 지원은 더 불투명해졌으며, 이미 시장에 내맡겨진 대학 구조조정이 더욱 무질서하고 잔인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위기일수록 원칙을 지키는 대안 모색이 중요하다. 한 예로, 이참에 현행 3월 입학제를 9월 입학제로 바꾸자는 제안은 혼란스럽다. 9월 입학제 취지의 하나는 요즘 어린이의 빠른 성장에 맞게 취학연령을 6개월 앞당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논의는 9월 입학제를 운영해온 국가들보다 취학연령을 1년 늦추게 되니 합당하지 않다. 물론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야겠지만, 9월 입학제 주장은 촉박해진 대입 일정에 지나치게 민감한 무원칙한 반응이다. 만약 감염 확산이 심해져 수험생들이 내년 3월보다 훨씬 늦게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대학이 여름·겨울 학기 운영까지 재편하여 지체된 학사일정을 소화하는 편이 타당하다. 대학입시가 여전히 우리 교육의 블랙홀임을 드러내는 해프닝 같아 씁쓸하며, 가난한 맞벌이 부모가 육아와 자녀교육에서 겪는 부담은 까맣게 잊힌 느낌이다.

대학등록금 일부 환불 요구 또한 원칙적으로 따질 점이 많다. 비대면강의의 한계나 학교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불이익 탓에 당연한 움직임이지만, 자칫하면 고등교육의 내일을 위한 핵심 쟁점을 놓칠 수 있다. 10여년 전에 대학교육의 질에 비해 가파르게 상승하는 등록금에 대한 반발로 ‘반값 등록금’이 뜨거운 사회적 의제가 된 과거를 냉철히 돌아봐야 한다. 당시 ‘반값 등록금’ 요구에 여야 정치권까지 공감한 덕분에 등록금 동결과 함께 국가장학금이 박근혜 정부 4년 사이 연 3000억원대에서 4조원대로 급증했다. 그러나 이 투자는 경제적으로 힘든 학생에게 당장 보탬이 될망정 대학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개별 학생에게 소득분위별로 지급하는 방식 탓에 막대한 재원이 사립대학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과제엔 전혀 기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좀 과장하자면, 국가장학금이 한계사학 내지 비리사학의 연명을 도운 셈이다.

‘반값 등록금’이 고등교육의 핵심을 찌르지 못한 일면적 구호였던 것처럼, 등록금 환불 요구가 대학교육이라는 상품 구매자의 권리 주장에 머문다면 무의미하다. 공공재인 고등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책임을 다할 것을 동시에 요구해야 하며, 학생의 권리, 교육의 경쟁력과 질적 향상, 고등교육 지원의 정부 책임이 선순환을 이룰 정책을 요구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위기일수록 원칙이 중요하다. 최근 현 정부의 공약 이행을 점검한 언론보도는 고등교육의 핵심 공약인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가 제자리걸음임을 지적했지만,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 이 주요 공약들을 더 잘 실행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내실있는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도 중요하지만, 전체 대학의 80% 이상이 사학이기 때문에 공영형 사립대는 더 중요하다. 그러나 후자는 올해 예산이 전액 삭감되어 공약 포기를 공식화한 꼴이며, 작년 예산이 이월된 실증연구사업도 전문대를 부당하게 배제한 채 4년제 대학 세 곳만 선정했다. 즉 공영형 사립대는 재추진 차원의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인류를 고통에 빠뜨리는 근대적 삶의 모순을 극복할 인재 양성과 학문적 성과가 가능하려면, 공공성이 확고한 대학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가 공공의료의 긴요함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있듯이.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km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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